사진첩에 담길 사진들은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인 1921년 안창호 선생과 함께 찍은 모습과 선생이 작곡가 홍난파에게 넘겨준 홍파동 집의 ‘울 밑에 선 봉선화’ 모습이 담긴 사진, 1928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받은 철학박사 학위 수여증 사진 등 100여장이다.
영숙씨는 “어머니(정복희·2004년 작고)가 피란길에도 들고 다니는 등 소중히 간직해온 미공개 자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16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도 독립을 주창하는 삼일신보(三一申報) 창간을 주도했다. 1932년 귀국 후 이화여전 교수가 됐으나 사상범으로 검거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해방과 함께 출감했고, 이후 서울대 교수로 일하다 6·25전쟁 때 납북됐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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