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낙하산은 낙하산이다

입력 2013-03-04 17:04   수정 2013-03-04 23:38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최근 금융권의 행태와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치(官治)가 없으면 정치(政治)가 되는 것이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권에 줄을 대 승진한 임원들과, 끼리끼리 밀어주며 임기를 연장하는 사외이사들을 염두에 둔 얘기라는 해석이다. 이들을 겨냥해 ‘내시(內侍)’라는 표현도 썼다고 한다. 우리금융지주와 관련해서는 “가장 청탁이 많은 곳”이라며 “청탁 순서대로 일이 해결된다”고까지 했다.

듣기에 따라선 ‘관치금융 옹호론’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현상만은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주인 없는 금융회사이기 때문이다.

'낙하산 불가'에 공신들 울상

신 후보자가 언급한 ‘줄대기의 폐해’는 요즘 관심인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연상시킨다. 낙하산 인사의 문제는 여러 가지다. 전문성도 없는 사람이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로 조직을 산으로 끌고 간다는 건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신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사람의 청탁을 거절하긴 힘들다. 그러다보니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인사가 꼬이게 된다는 게 낙하산을 경험한 공공기관 직원들의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폐해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전문성을 중시하고 낙하산 인사를 철저히 막겠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걸 보면 말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원칙이 알려지자 땅을 치는 사람과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 나름대로 공헌한 사람들은 울상 그 자체다. 흔하디 흔한 공기업 감사 자리나 사외이사 자리를 꿰차기도 녹록지 않아진 탓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외곽단체의 ‘OO위원장’이란 명함을 들고 뛰었던 한 인사는 “내심 공기업 임원 자리를 바랐다”며 “MB정부 때는 욕을 먹으면서까지 선거 공신들의 자리를 찾아주지 않았느냐”고 아쉬워했다.

낙하산 못오니 연임하겠다고?

고위 관료들의 인상도 썩 밝지는 않다. 고위 관료 대부분은 옷을 벗으면 산하기관장으로 내려가는 게 관행이었다. 앞으론 이것이 여의치 않아질 것 같으니 속이 편할 리 없다.

일부 교수들은 다르다. 교수 한 분은 “요즘 몇몇 교수들은 공공기관장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고 전했다. 전문성을 잣대로 할 경우 교수만한 사람이 있겠느냐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현재 공공기관장과 임원들도 표정이 밝은 축에 속한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초기 ‘완장 찬 유인촌’과 ‘공공기관장 일괄사표 소동’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낙하산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각오했던 이들도 상당수다.

그런 이들이 바뀌었다. 임기를 채우는 것은 물론, 내심 연임까지 바라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3년 안팎 일했으니 이제는 ‘낙하산 아닌 전문가’라는 사람(전문가 변신론)도 있고, 혼자 힘만으로 선임 절차를 통과했으니 애당초 낙하산이 아니었다는 사람(낙하산 원천 부인론)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볼썽사납다. 낙하산인지 아닌지는 본인들이 가장 잘 안다. 혹시 낙하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임기 전에 물러나지는 않더라도, 연임 의사는 깨끗이 접는 게 맞다. ‘실세들의 지원’도 끊긴 마당이라 낙하산으로서의 역할도 다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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