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미래부 논란, 리펜슈탈의 추억

입력 2013-03-04 17:44   수정 2013-03-04 23:41

문민통치 벗어난 관료 전성시대…官治 커질수록 국민행복은 저해
창조경제 죽고 고시낭인만 늘 듯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의 인선이 지난주에야 끝났다. 육사 출신이거나 고시 출신들이다. 거창한 레토릭보다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말없고 조용하며, 무실역행하는 성품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그렇다! 박 대통령은 말이 적고 잔꾀를 내지 않고 묵묵히 과업을 처리하는 전문가 스타일을 선호한다. 총리와 경제부총리는 말할 것도 없고 장관을 거쳐 청와대 수석까지도 그렇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유일한 민간업자 출신이었지만 한국의 낡은 정치가 ‘장차의 거물’을 용납할 리 없다.

관료 출신을 전진배치하는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행정의 지속성, 전문성 외에 청문회 통과가 무난하다는 점도 감안됐을 것이다. 99만명 공무원을 우군(友軍)으로 만드는 효과도 있다. 장점이 많아서가 아니라 단점이 적어서 선택된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실망스럽다. 관료의 장점이라는 것도 실은 몇 가지 조건이 만들어내는 신기루요 착시일 가능성이 크다. 관료들은 각종 규제정보와 수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무원들이 행정 정보의 공개를 꺼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보를 공개할수록 말들이 많아지고 관료의 전문성으로 비쳐졌던 특성들은 약화된다. 더구나 그 전문성이라는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반개혁적이다. 목표 지향이기보다는 수단 적합적이며 ‘가능한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이 관료 행태학의 골자다. 이런 특성은 종종 ‘영혼의 부재’ 논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신 복종과 충직성이라는 점수를 얻어낸다.

관료 일색인 내각은 분명 문민 통치의 후퇴다. 고위직은 시민적 충원이라야 하며 행정 권력을 시민의 통제, 다시 말해 주권자인 국민의 발 아래에 두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아뿔싸! 관료들은 버리기에는 너무 유능하다. 관료를 유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아주 많다. 물론 고시를 패스할 정도의 두뇌는 기본 조건이다. 여기에 정부 규제가 많아질수록, 큰 정부가 될수록, 산하단체의 먹거리가 많아질수록, 세금이 많아질수록 관료 집단은 더욱 능력있는 집단이 된다. 주사(주무관)가 방석 아래 깔고 있는 규제는 과장도 국장도 모른다는 상황이다. 행정규제가 촘촘해질수록 외부 인사가 행정부처를 통제하기는 어려워진다. 결국 장차관은 관료의 독무대가 되는 것이다.

개발연대의 거물, 남덕우 전 총리조차 관료들로부터 ‘남 교수’라는 핍칭을 들어야 했다. 남 장관의 정책을 묻는 기자들에게 공무원들은 종종 “그런 문제는 남 교수에게나 물어보시오”라고 이죽거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혹시 개발연대의 관료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능한 관료가 경제개발을 이끌었다는 주장 역시 허구다. 경제성장은 유능한 관료가 아니라 정주영 이병철 같은 탁월한 기업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유능한 관료로 따지면 구소련의 고스플란(GOSPLAN) 같은 조직도 없었다. 그러나 구소련에는 정주영과 이병철도 없었다. 유사한 개발독재였지만 결과가 달랐던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감사원과 공정위 출신의 퇴로가 활짝 열린 것도 관료공화국의 한 증좌다. 관료들은 바로 이 장면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규제가 커질수록 관료들의 문전옥답도 풍부해진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개방형 공무원 제도였지만 박종구 전 국무총리실장 등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실패였다. 그 누구도 텃세를 뚫지 못했다. 국가의 간섭이 늘어날수록 관료 통치가 합리화된다. 그래서 경제민주화 시대에 관료 독식은 자연스럽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이는 직업공무원 제도의 취지에도 반한다. 정치로부터 독립시키는 대신 신분은 보장한다는 것이 직업공무원제의 취지다.

청문회 문제도 그렇다. 노후 보장에, 퇴직 후 고액 연봉도 고위 관료만한 것이 없다. 못해도 자기가 근무하던 부처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대학교수나 지방대학 총장 정도는 할 수 있다. 깨끗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신상털기식 청문회는 그렇게 관료들의 천국을 완성시켜 가는중이다. 관료 제도는 자기강화적이다. 한번 그것에 빠지면 더욱 더 그 속에 매몰된다. 어떻든 청년 기업가 보다는 인생 대박 고시낭인들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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