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0년, 기로에 선 한국] "中 부패는 덩샤오핑 그림자…시진핑 개혁 쉽지 않아"

입력 2013-03-07 17:21   수정 2013-03-08 04:32

(4) 또 다른 변수 '부패'

'덩샤오핑의 시대' 저자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

中 기득권층 변화 두려워해
영토분쟁은 내부 결속용 해결 찾을 것
北-中 긴장 한국엔 기회 中과 더 협력을



오는 14일 중국 국가 주석에 오르는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는 부패 척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전문가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사회학과 명예교수(83)는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유산인 부패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며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 사회는 덩샤오핑 집권 시대와 달리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 개혁의 성패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보걸 교수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역사를 담은 저서 ‘덩샤오핑의 시대’를 지난 1월 베이징에서 번역 출간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금기사항인 톈안먼(天安門) 사건 내용이 자세히 기술돼 있지만 시 총서기가 책을 읽어보고 출판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걸 교수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인근의 자택에서 만났다.

▷왜 덩샤오핑을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나.

“덩샤오핑 집권 초기인 1978년 중국은 가난한 나라, 혼돈의 나라였다. 대약진정책(마오쩌둥의 공업화정책) 실패로 경제는 거덜났고 문화혁명 이후 사회는 분열됐다. 외부와는 단절된 나라였다. 덩샤오핑은 이런 나라를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3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을 하면서 초강국으로 탈바꿈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중국도 없었을 것이다.”

▷덩샤오핑의 리더십을 설명하면.

“그는 아주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군, 지방정부, 금융기관, 당에서 활동했다. 언제나 분명하고 강한 메시지, 일관된 방향성을 제시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정치를 잘 알고 다수를 자기 편으로 만들면서도 국가의 분열을 막은 강한 지도자였다.”

▷시진핑이 ‘제2의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시진핑은 작년 말 선전시에 있는 덩샤오핑 동상을 찾아 헌화했다.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도 개혁파였고 덩샤오핑과 가까웠다. 시진핑도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무척 힘들 것이다. 부패가 너무 만연돼 있다. 당 간부, 관료 등과 결탁한 기업들이 중앙정부의 간섭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을 갖고 있다. 이들의 친인척은 말할 것도 없다.”

▷부패문제는 덩샤오핑의 유산이라고 지적했는데.

“덩샤오핑이 개혁을 시도할 때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이 문제였다. 서슬 퍼런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잘못하면 처벌을 받을까봐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관료들에게 용기를 갖고 돌진하라고 주문했다. 또 방대한 나라를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 지방 관료들에게 많은 재량권을 줬다. 사소한 잘못이나 위법행위는 눈감아줬다. 이 과정에서 부패가 생겨났다.(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6월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로 도피한 부패 관료 수가 1

6000~1만8000명, 반출된 재산 규모가 8000억위안(약 144조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냈다.)”

▷시진핑의 부패 척결이 성공할 것으로 보나.

“시진핑은 매우 강한 지도자다. 공산당 내 영향력도 크다. 강하게 개혁을 밀어붙이겠지만 상황이 우호적이지는 않다. 덩샤오핑 시대에는 모두가 변화를 원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부정부패가 너무 확산돼 있으며 기득권층이 개혁을 두려워하고 반발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개혁 부진으로 중국판 ‘재스민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당 지도부도 이를 두려워한다. 다만 중국은 공산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외부세력을 결집해 대항하기가 어렵다. 물론 멀리 보면 공산당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당장 그럴 가능성은 없다.”

▷시진핑은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강경한 입장인데.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내부용’이라고 봐야 한다. 시진핑은 분쟁보다 평화가 중국에 더 유리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분쟁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덩샤오핑의 길(실리 외교)을 따라갈 것이다.”

▷덩샤오핑의 외교전략은.

“평화와 실리를 중시했다.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끌어내면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을 설득해 수백명의 대학생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그 후 중국 학생 100만여명이 해외로 나갔으며 3분의 1 이상이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중국에 돌아왔다. 당시 옛 소련이 서방국가와 적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방비에 돈을 쏟아부었지만 덩샤오핑은 관계 개선에 주력, 국방비를 줄여 경제로 돌렸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중국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달라졌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긴장관계는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중이 더 긴밀한 협력을 해야 한다. 물론 중국이 북한에 핵 개발을 포기하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압박은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긴장관계가 형성된) 지금이 북핵 등 대북문제를 푸는 데 아주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미국내 최고 중국통…보시라이 아들의 멘토

보걸 교수는 누구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작년 5월 초 부패혐의로 수감 중인 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시 당서기의 아들 보과과로부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중국에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부모 문제로 그럴 수 없게 된 보과과가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보걸 교수는 “플레이보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보걸 교수는 보과과가 인생의 멘토로 삼을 정도로 미국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자 동북아시아 전문가로 꼽힌다.

오하이오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웨슬리언대를 졸업한 뒤 1958년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북아연구소를 이끌어왔다. 1991년 저서 ‘네 마리의 작은 용’을 통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서 유교 윤리가 접목된 동양식 자본주의 정신이 아시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국가정보협의회(NIC) 동아시아 담당 분석관으로 일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에 즈음해선 동아시아 정책자문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병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함께 ‘박정희 시대’라는 책도 펴냈다.

케임브리지=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한경·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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