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요리에 와인 대신 갈비에 '소폭' 즐기는 파리지앵…입맛은 한국사람 다 됐죠
안정된 공무원 생활 박차고 자동차 회사에서 새 도전
김치·치즈가 유명해진 것처럼 르노삼성 세계적 브랜드 만들 것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최고경영자(CEO)에게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업 현장에서 매일 치열하게 실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 기업의 수장에게는 더욱 그렇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칫 한가롭게 보일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자동차 사장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우리 차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괜찮다”고 했다. 2011년 9월 부임한 이후 판매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그는 저녁을 먹는 동안 한국 생활의 소회와 고민을 털어놨다.
○한국 음식을 사랑한 소박한 파리지앵
프로보 사장을 만난 건 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달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통 파리지앵인 만큼 약속 장소는 달팽이 요리와 고급 와인을 내놓는 프렌치 레스토랑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식당가 뒷골목에 있는 평범한 3층짜리 고깃집이었다. 그는 곱게 포장한 초콜릿을 건네며 멋쩍게 말했다. “프랑스 음식보다 한국 음식을 더 좋아하거든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보지 않고도 척척 주문을 했다. 이곳은 그가 주말마다 가족과 들르는 단골집이다. 즐겨 먹는 메뉴는 생통갈비살. 화로에 담긴 시뻘건 숯불이 올라오고 큼직하게 칼집을 내 육질을 부드럽게 한 갈비가 나왔다. 석쇠 위에 한 덩어리 올려놓으니 뭉근한 불 위에 지지직 소리를 내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프로보 사장은 “몇 달 만에 일찍 퇴근해 여유 있게 저녁을 먹는다”며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쌈장을 바르고 상추쌈을 만들어 입에 넣었다. 젓가락질도 능숙했다. 먹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그는 전날 르노그룹의 글로벌 실적 발표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다. 자동차 시장 침체로 연일 강행군이다. 지방 출장, 릴레이 회의로 빈틈 없는 스케줄 때문에 이날 저녁 약속을 잡는 데도 두 달이 걸렸다. 일에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지만 평소엔 한국을 사랑하는 털털한 외국인의 모습이다. “저를 닮아서인지 초등학생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코리안 바비큐’입니다. 아이들과 외식할 땐 이렇게 제대로 못 먹어요. 고기가 익기 무섭게 채 가거든요. 지금 든든히 먹어둬야 해요.”
말을 마치자마자 양념이 자작하게 밴 양념통갈비살 1인분을 추가로 주문했다. 한국에 부임한 지 1년5개월째. 프랑스 음식은 끊다시피했다.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올초 이사한 서울 가산동 신사옥에서도 점심 때면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의 4800원짜리 식판밥을 먹는다.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다”며 새파란 풋고추를 고추장에 듬뿍 찍어 성큼 베어물었다. “김치도 좋아합니다. 김치를 보면 한국과 프랑스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기 있는 겉절이나 깍두기처럼 김치도 재료와 지역별로, 발효 정도에 따라 종류가 천차만별이잖아요. 프랑스의 치즈도 마을마다 다르지요.”
프랑스 회사인 르노와 한국의 삼성자동차가 만난 르노삼성차는 어쩌면 치즈와 김치의 궁합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발효 기술로 만들어진 김치와 치즈가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처럼 르노삼성차도 두 나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야죠.”
○안정된 공무원 버리고 택한 자동차 회사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던 프로보 사장은 칼칼한 목을 축이기 위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회식 땐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도 즐긴다고 했다. “소주는 부드러운 술이죠. 러시아에 근무할 때 독한 술을 많이 마셔 봐서 그런가 봅니다. 한국에서는 이력서에 주량을 적더군요. 정확한 주량을 몰라 제 이력서 주량은 빈 칸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만큼 그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그가 처음부터 자동차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일류 대학을 졸업한 뒤 스물여섯 살이 되던 1994년 재정경제부에서 공직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모범생 스타일의 첫인상이 공무원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안경테 너머로 보이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보면 학창 시절 반항 한번 안 한 공부벌레였을 것 같다. 프로보 사장은 “역사 선생님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고분고분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손을 내저었다. 안정된 공직 생활을 박차고 서른넷에 기업체에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 것도 일종의 ‘반항’이었다.
자동차 회사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요샛말로 ‘빡세기 때문(demanding)’이라고 했다. “자동차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입니다. 성능, 가격, 디자인, AS, 마케팅 등 여러 부문에서 ‘마법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소비자에게 외면당하죠. 상징적인 제품을 만든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나는 SM5는 좋은데 SM3는 별로야’라는 식으로 자동차에 대해 저마다 의견을 갖고 있잖아요? 고객의 요구가 까다롭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그게 제가 자동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프랑스에선 이름 날리던 영업맨
얌전하게 책상머리에서 사무업무만 봤을 것 같지만 그는 프랑스에서 ‘영업의 달인’으로 불렸다. 2002년 르노그룹에 입사한 후 파리의 한 영업지점장으로 처음 근무를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월 150대를 판매하며 수완을 발휘했다. 영업실적이 최하위였던 곳도 최우수 지점으로 바꿔놨다. 매년 영업왕을 휩쓸다 보니 부상으로 해외 여행권을 받아 다녀온 국가만 5개국에 이른다.
프로보 사장은 포르투갈법인 총괄임원, 러시아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영업 비결을 묻자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5분 이상 고객에게 투자하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업사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일 최소 5분 이상 고객이 제기한 문제점을 검토하는 데 할애합니다. 고객의 불만사항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제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죠.” B2면에 계속
"사장된 지금도 매일 고객에게 전화해 불만 청취"
현장 경영도 그가 고집하는 원칙 중 하나다. 르노삼성차 사장으로 부임한 후 1년반 동안 100여개의 전국 영업지점을 방문하고 영업사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사무실에 앉아 얻는 정보와 직접 현장에 나가 보고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업 지점장 시절에도 AS 평가를 위해 매일 고객에게 전화하고 불만이 접수된 곳은 직접 찾아갔죠. 사장이 된 지금도 똑같이 합니다.”
○르노삼성차는 반드시 살아난다
석쇠에 바싹 익은 고기 몇 점만 남았다. 그는 어느새 작은 국그릇에 담긴 된장국을 뚝딱 비우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는 이 된장국처럼 쓴맛, 짠맛도 봤다. 작년부터 내수 판매 부진에 시달렸던 르노삼성차는 지난달 반짝 회복세를 보였다. 전달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총 1만1611대가 팔려 한숨 돌렸다.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와 짧은 근무일수 탓에 경쟁사들의 판매량은 줄었지만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말 출시한 ‘뉴 SM5 플래티넘’이 재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프로보 사장이 르노삼성차에서 맡은 첫 번째 프로젝트여서 자식 같은 모델이다. 그는 “신형 SM5의 최종 디자인 미팅이 있던 2011년 크리스마스를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마무리된 도안을 보니 확신이 서지 않았죠. 주변에서는 고치기 늦었다고 만류했지만 한국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집요하게 설득했죠. 결국 본사 직원이 모두 달려들어 디자인을 통째로 바꿨습니다. 불가능은 없더군요.”
이렇게 완성된 뉴 SM5 플래티넘은 르노삼성차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에서 통하려면 소비자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르노삼성차 직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SM5가 점차 입소문을 타자 침체됐던 사내 분위기도 반전됐다. 후식으로 과일이 들어오자 어지럽던 저녁상 분위기도 밝아졌다. 프로보 사장은 르노삼성차의 저력에 대해 강조했다. “르노삼성차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국의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부산공장 80여명의 인력이 르노그룹의 인도, 러시아, 브라질, 중국에 파견돼 기술을 전수하고 신차 개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의 인력들이 있기 때문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프로보 사장의 단골집 마포본가 달짝지근한 양념 돼지갈비 일품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자동차 사장이 즐겨 찾는 맛집은 서울 방배동에 있는 숯불 돼지갈비 전문점 마포본가다. 두껍고 통통한 갈비살에 달짝지근한 양념이 배어 육즙이 살아 있다. 메인 메뉴인 국내산 마포돼지갈비(250g)는 1인분에 1만2000원. 미국산인 양념통갈비살(150g)과 생통갈비살(120g)은 각각 1만3000원, 1만4000원이다. 공기밥(2000원)을 시키면 된장찌개가 따라 나온다. 된장찌개는 잘게 썬 돼지고기와 양파, 호박, 두부를 듬뿍 넣고 팔팔 끓여내 진한 맛을 낸다.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다.
누룽지(4000원)와 물냉면(5000원)도 있다. 물냉면은 살얼음을 동동 띄운 매콤한 육수에 쫄깃한 면발, 고명으로 얹은 오이와 무김치가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고기를 먹은 후 입가심하기에 좋다. 인근 직장인의 회식모임이 많아 오후 7시 이후에는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사당역 11번 출구로 나와 파스텔시티 뒤편 공영주차장을 지나 식당가 첫 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가정집을 개조한 1, 2층 공간에 단체 예약이 가능한 룸이 갖춰져 있다. 소수 인원은 사전 예약을 받지 않는다. 연중무휴며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10시40분이다. (02)525-5392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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