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학기

입력 2013-03-21 16:57   수정 2013-03-22 03:10

세상은 좋아졌다지만 더 힘든 아이들…과연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 걸까

이현종 <HS애드 대표크리에이티브디렉터 jjongcd@hsad.co.kr>



어느 드라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인이란 과거의 땅에 사는 사람이야’라는 대사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귀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노인이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때때로 과거의 땅에서 꿈을 찾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수(鄕愁)’는 늘 좋은 세일즈맨이다. 몇 년 전인가 무엇에 이끌린 듯, 서울 아현동 골목길을 헤매며 돌아다닌 적이 있다. 아현동은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이다. 더 정확하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시절을 보낸 곳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엔 유독 그 나이 때 기억들이 강력하게 접착돼 있다.

그런데 그 달동네 집들이 뉴타운 사업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내다, 그날 갑자기 아현동을 향해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임종을 지키러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한 채, 혹시나 사라져버리면 영원히 미안할 것 같은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헐리고, 주위가 온통 폐허로 변했지만 천만 다행히도 내가 찾던 골목길과 우리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살던 사람들은 이미 다들 떠난 상태였는데 빛바랜 나무 문하며, 다닥다닥 붙은 담벼락들은 그대로였다. 담벼락 너머로 애들 싸우는 소리, 세숫대야 나뒹구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것 같았다. 다들 어디들 가서 살고 있는 걸까.

어른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버거운 그 골목길에서 우리는 쓰레기통 맞추기 축구도 하고, 말타기도 했다. 혼자 걷다 앙칼지게 짖어대는 스피츠라도 만난 날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얼음이 된 채 한참을 서 있다 도망치기 일쑤였다.

버젓하게 살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힘들다면 오히려 요즘 애들이 더 힘든 것 같다. 살기는 훨씬 더 잘 산다고 하는데 말이다. 신학기가 되고 아이들은 새 교과서도 사고, 새 자습서도 사고 또다시 전시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그나마 유일한 낙이라고 하는 스마트폰에 빠져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 전 차를 몰고 가는데 뒷좌석에 탄 후배 녀석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느냐 마느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 걸까.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들의 고민이 귓전을 맴돌았다.

이현종 <HS애드 대표크리에이티브디렉터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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