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배추 국장'보다 '물류 국장'을

입력 2013-03-24 16:50   수정 2013-03-24 23:59

손희식 생활경제부장 hssohn@hankyung.com


배추가격이 폭락하면 시름에 젖은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고, 가격이 폭등하면 장바구니를 든 소비자들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해마다 들쭉날쭉한 가격 변동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불만이었던 게 농축산물의 구조적인 문제였다.

새 정부는 ‘획기적인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농협 하나로클럽을 방문, 중점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관계 부처와 민간이 참여하는 ‘유통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지난달 출범시켜 오는 5월 말께 개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단기 처방에 치우쳐선 곤란

유통구조 개선과 관련해 몇 가지 확실히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장·단기 대책을 명확하게 마련하는 일이다. 예컨대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가 지난 7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임원들을 불러 ‘대규모 가격할인 행사를 지속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지극히 단기적인 처방이다. 유통단계 축소를 통한 일자리 감소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가격은 품목에 따라 헷갈리는 일도 종종 있다. 요즘 나오는 월동배추만 하더라도 상품(上品)의 전국 평균 소매값은 포기당 3986원으로 작년 이맘때의 3392원에 비해 17.5% 비싸졌다. 하지만 배추 중품(中品)은 한 포기에 2888원으로 1년 전(2990원)과 비슷하다. 평년 가격(작년까지 이맘때 5년 평균)에 비해서도 배추 상품은 12.3% 비싸지만, 중품은 오히려 7.5% 싸졌다.

또 배추의 산지(産地)가격에 대해선 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불합리한 유통구조로 인해 배추 한 포기가 산지에서는 500원인데, 소매가격은 5000원으로 10배나 뜀박질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500원은 농민이 25일가량 재배해 산지유통인에게 넘기는 ‘밭떼기’ 가격이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배추는 산지유통인이 2개월 넘게 추가로 농사를 지은 것이다. 여기에 드는 농약과 비료 값, 인건비 등을 더한 산지가격은 포기당 500원이 아니라 1500~2000원 수준이란 설명이다.

물류 개선 통한 유통비용 절감

박 대통령은 하나로클럽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마다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작년 초에도 품목별로 정부 부처 국·실장급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관리토록 하는 ‘물가안정책임제’를 도입했다. 1970년대식 ‘배추 국장’이란 말까지 다시 나왔지만, 단기 처방에만 집중했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는 못했다.

채소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유통단계는 물론 유통기간을 줄여야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 김장철에 집중 출하되는 가을배추는 월동배추와 달리 저장성이 거의 없어 가격 급등락을 반복해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해답은 대형마트가 내놨다. 이들은 농가·산지유통인과의 사전계약 및 산지 직거래로 유통단계를 줄였다. 이마트는 지난해 대규모 가공·저장·포장 시설인 ‘후레쉬센터’를 세워 농산물 판매가격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유통단계를 줄이고 직거래 비중을 늘리려면 저장·포장·가공 기능을 갖춘 거점별 물류창고를 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영세한 농가에서 물류창고를 거쳐 바로 소매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주식시장의 작전세력이나 다름없는 유통단계에서의 매점매석을 통한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생산량과 소비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해 정교한 정책을 마련하는 정책 담당자가 필요하다.

손희식 생활경제부장 hssoh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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