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광수 "책장사라니… 수업교재도 안사는 요즘 대학생에 실망"

입력 2013-03-26 15:44   수정 2013-03-26 22:53


"자유 주면 자율 생긴다 믿었는데… 적반하장"

필화 사건도, 동료 교수들과의 불화도 아니다.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62·사진)가 이번엔 엉뚱한 '책 장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학생들에게 수업 교재인 자신의 저서를 산 영수증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해 문제가 됐다. 어길 경우 학점을 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학생들은 반발했다. 사실상 강매란 것이다. 교재를 구입해 영수증을 얻은 뒤 환불하면 된다는 '대처 요령'까지 나왔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러자 마 교수는 더 강하게 나왔다. 학교 홈페이지(www.yonsei.ac.kr)에 직접 '학생들의 뻔뻔스런 수강 태도에 분노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질타했다. "5000원짜리 커피를 즐겨 마시며 한 학기 2만 원 남짓 교재 값은 아까워한다"며 요즘 대학생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떠도는 말들 가운데 논란의 진실은 무엇일까. 당사자에게 직접 사건의 전말을 듣기 위해 26일 동부이촌동 그의 집을 찾았다.

마 교수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죽 했으면 그랬겠나"라고 서두를 뗐다. 사회적 논란에 갇힐 때마다 그의 편이 돼줬던 학생들이 "200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 변했다"고 했다. 그는 "수업 교재 구입은 배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냐" 며 "학생들이 해가 갈수록 얌체주의, 이기주의로 변하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 책 장사 논란, 왜 나온 건가요.

"적반하장이에요. 수업 교재도 안사고 버티는 학생이 많아요. 싸우러 가는데 총 안 갖고 가는 거랑 똑같아. 제가 수십 년 동안 가르쳤어요. 예전 학생들은 당연히 교재는 사는 걸로 알았어요. 사실 의무적으로 영수증 제출하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도 화가 나서요. 지난 학기 수업을 600명 정도 들었는데 교재를 산 건 50명밖에 안 된다고 하니까."

- 학생들에게 실망이 큰 것 같습니다.

"가짜 영수증 만드는 방법까지 올리는 것 보고. (한숨) 요즘 학생들 커피 값, 술값에 스마트폰 통신비는 안 아껴요. 홍대 앞에 춤추러 가고, 데이트 하면 적어도 10만 원은 깨진다고. 내 교재 얼마 해요? 9000원짜리, 1만3800원짜리 두 권 합쳐 2만 원 조금 넘어요. e-북도 인정해준다고 했어요. 1만3800원 종이책 비싸면 7000원짜리 e-북으로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걸 아깝다 하면…"

- 한 학기 2만 원 내외인데, 이건 너무하다는 거네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거랑 똑같은 심보라고. 경제학 같은 수업은 10만 원짜리 두꺼운 원서 사게 해도 항의 안 해요. 거기서 시험 문제 내고 하거든요. 교재 치고도 싼 편이에요. 이번에 학생들에게 너무 실망을 했어. 내가 주장하는 게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인데. 수업도 억지로 출석 체크하고 앉혀놓는 게 치사한 거야. 그래서 방침을 자유를 주겠다, 전자출결로 학생증만 찍어라, 했다고. 그런데 학생증만 찍고 도망가는 거야. 제가 불러도 가버려요."

- 교수님 저서로 지정한 게 문제란 얘기도 있습니다.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데, 그걸 몇 푼이나 번다고. 요새 9000원짜리 책이 어디 있어요. 출판사에도 얘기했어요, 값 올리지 말라고. 내 저서만 아니면 괜찮았다 그러기도 하는데, 아니, 선생이 자기가 연구한 걸로 가르치면 칭찬해야지. 저서 없이 강의하는 게 오히려 불성실한 교수지. 그걸 말이라고 해."

- 책 장사, 돈 문제로만 바라보는 게 서운하다?

"내가 인세 받아봐야 얼마나 받겠어. 학술 서적이라 1000~2000권 찍어요. 돈 벌겠다는 책이 아니지. 내 강의는 교재를 참고로 사라는 게 아니야. 내가 쓴 학술 서적 갖고 읽으면서 하는 강독식 수업이야. 그런데 수업 들어가면 앞에 책을 펴놓은 학생이 없어요. 어떨 때는 내가 읽어버려. 화가 나더라고."

- 등록금도 비싼데 책 사는 게 부담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정말 책값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딱한 사정 얘기했으면 봐줬을 거야. 저는 항상 얘기하는 게 학교 다닐 때 절대 도서관에서 책 빌려본 적 없어요. 수업 교재를 닷새 빌려서 내용을 소화시킬 수 없는 거야. 교재 사는 건 수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도서관에 있다고 하는데, 교재 3권 있어요. 600명이 어떻게 봐. 그걸로 본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 원래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교수에요. 맞담배 피라고 하고, 인사 나만큼 잘 받아주는 교수도 없어요. 학생들도 내가 힘들 때마다 힘이 돼줬고. 필화 사건 겪었을 때 나 지지한다고 데모도 하고. 강의 배정 안 돼서 '무학점 강의' 무대포로 할 때도 100명씩 와서 들었어. 그런데 2000년대 중반 넘어가면서 학생들이 바뀌었어."

- 어떻게 바뀌었다는 겁니까.

"해가 갈수록 얌체주의, 이기주의에 '너 죽고 나 살자' 주의야. 수업은 엉터리로 책도 안 사는데 스펙은 쌓아야 하니 학점은 잘 달라고 항의가 빗발치는 거야. 옛날 손으로 리포트 쓰던 세대와 인터넷 발달한 지금 리포트 수준 차가 엄청나요. 리포트 양심껏 써와라, 해도 소용없어. 인터넷에서 마광수 검색하면 리포트 파는 사이트가 있어요. 짜깁기해서 낸다고.

게다가 이번엔 날 책 강매하는 인간으로 몰았잖아. 자율을 주니 악용을 하는 거지. 하버드대는 참고서적 한 주에 한 권씩 사고 리포트 제출하게 하고 그래요. 우리나라는 정말 편하게 학교 다니는 거야. 저조차도 반성해요. 이번 일 겪으면서 한 마디로 학생을 못 믿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 '젊은 학생들 못 믿겠다'라. 조금 의외입니다.

"이젠 학생들 못 믿겠어. 사실 저는 옛날부터 앞날에 기대했어요. 신세대 문화에 기대한다, 이런 글을 많이 썼어. 그런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제 학생들이 교수 강의평가로 권력행사를 하려고 해. 저는 정년 보장받은 정교수니까 상관없는데, 교수가 학생 눈치보고 학생에게 종속되게 하는 거야. 학생들이 정확하게 평가하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학점 잘 주면 강의평가 점수 잘 주는 식이에요."

-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졌으면 좋겠습니까?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부터 무너져 있어요. 학생들이 학원에서 열심히 배우고 학교에 와선 자고 떠들고 문자 주고받고 한대요. 선생이 야단치면 나가버리고, 학부모가 나서 난리 피우고. 그렇게 자란 애들이 대학까지 이어지는 거지. 토익 교재는 몇만 원씩 하는데 안 아까운 거야. 교권을 세워줘야 돼. 대학도 마찬가지에요. 교수를 학생 아래 두게 놔뒀어요. 교권이 지나치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지켜줘야 한다는 거죠."

- 결국 학생들의 교재 구입 방침은 유효하군요.

"오히려 학생들이 정보를 준 거지. 가짜 영수증 제출하는 방법까지 이번에 알았어요. 조교가 5명인데 그까짓 것 검사 못해요? 다 검사하고 아예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실물을 확인할 생각도 있어요. 지독한 애들이야. 그런 요령까지 당연한 듯 얘기하고 있어. 아이고, 난 정말 끔찍해. (웃음) 아까 '너 죽고 나 살자'라 그랬죠? 순수한 경쟁의 논리가 아닌 승자독식, 약육강식에 원칙 없는 정글처럼 돼버렸어요."

- 산전수전 겪었는데, 이번 일이 더 충격인 것 같습니다.

"풍파를 많이 겪었어요. 동료 교수들한테 왕따 당했고, 퇴임 후에 연금도 못 받아요. 사학연금공단 규정에 실형 이상 전과자는 박탈하게 돼 있어요. 다들 고소하라 하는데, 난 재판에 이가 갈리는 사람이야. '즐거운 사라' 항소한 거 지금도 후회하거든요. 법정이 싫어요. 그것보다 더 슬픈 건 결론이 '학생을 눌러야 한다'로 가게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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