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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활동 중인 한국 미술가들에게 조각가 존 배(76·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라는 이름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과 함께 미술 한류의 ‘대부’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농촌 계몽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배민수 목사와 함께 열두 살이던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독창적인 철사 조형예술의 세계를 개척했다. 27세에 프랫 인스티튜트 최연소 조각학과장이 돼 주목받은 그는 일흔이 넘도록 철사를 용접해 이어붙이는 조형 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선(철사)이 변주되면서 빚어내는 조형미에 동양적 정서까지 아우른 그의 작품전이 7년 만에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인간은 피부가 다르고 사는 곳, 먹는 음식, 입는 옷이 달라도 내면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똑같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자주 경험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서로 하나의 선처럼 연결됐다고 생각했어요. 과학에서는 원자들이 선을 통해 이어지고, 음악도 결국은 하나의 음에서 시작한 선율이잖아요.”
선이 좋아 철사 작업을 계속한다는 그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어주는 ‘선’을 소재로 인간의 본질을 조형화하는 데 평생을 받쳤다”며 “내 작업은 소설가나 시인, 음악가가 하나의 ‘선’ 위에서 모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가 철사 조형과 용접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축구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축구를 좋아했는데 축구공의 속도와 방향, 선수들의 움직임, 공과 선수의 충돌 등에서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졌어요. 그 모습에서 어린 시절 경험한 볼쇼이 발레단 무용수들의 날렵한 몸짓, 누나의 피아노 반주 소리가 스쳐 지나가더군요. 축구도 음악이나 무용처럼 ‘선의 미학’이라고 생각했죠.”
철사는 녹이 슬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생명체와도 같은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는 존 배. 그는 고령인데도 재료 선택부터 용접과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혼자 진행한다.
“늘상 바흐를 들으며 작업했죠. 그래서 제 작업은 바흐 음악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바흐의 음악 세계는 워낙 깊고 투명해서 음 하나하나를 놓치면 안 되거든요.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각각의 음을 이어주는 화음입니다. 조각에서도 어떻게 하면 그런 화음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했고요. 매 순간 우연한 결정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에 철사 하나하나를 잘 잡아내야 해요. 그래서 남에게 지시할 수도 없고요. ”
그는 “용접 작업은 드로잉과도 같다”며 “철사를 녹이면 부드러워지고 액체처럼 되는데 그림 그리듯 쉽게 작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철사 줄을 구불구불 말아 만든 둥그런 공, 그물 철망을 세워 붙인 후 살짝 비튼 조각, 철망 몇 장을 어슷하게 세워 붙인 후 살짝 비틀어놓은 조형물 등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이 작품들에는 공기처럼 잡을 수는 없으나 희미한 기억들이 숨어 있는 듯하다.
“꿈은 항상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갑자기 흔적도 없이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기억은 마치 믿음직스러운 친구처럼 은신처에 머물며 언제든지 나를 위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죠.”
‘기억의 은신처’를 주제로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본능적 은신처로 느끼는 엄마의 따뜻한 뱃속과도 같은 철사 작품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j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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