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낙마했다는 김종훈의 '또다른 편견'

입력 2013-04-01 17:20   수정 2013-04-02 01:50

인사이드 Story - WP 기고문 논란

"10대 재벌, GDP 80% 차지"
매출 합계로 단순계산 오류…中企 매출은 GDP의 119%

"한국서 마녀사냥 당했다"
민족주의 탓 사퇴 주장에 네티즌들 "당연한 검증을 …"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 후보자였다가 자진 사퇴한 김종훈(사진) 씨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이 논란을 낳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31일자 WP 오피니언 페이지에 ‘민족주의에 의해 좌절된 한국으로의 귀환’이란 제목의 기고를 했다. 이 글에서 김씨는 미래부 장관 후보자 발표 직후 자신을 향한 검증 공세와 사퇴 배경을 해명했다.

○10대 재벌이 GDP의 80% 차지?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비판한 대목이 사실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릴 정도의 성취를 거뒀지만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겉으로 드러난 성과가 만성적인 약점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10대 재벌은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고용 규모는 전체의 6%에도 못 미친다”며 “이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김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김씨는 10대 재벌의 매출 합계가 GDP의 80%라고 지적한 것 같은데, 매출과 GDP는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GDP는 가계와 정부, 기업이 생산활동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의 합이다. 반면 매출은 제품 총판매액을 의미한다. 해외 매출도 포함된다. 따라서 GDP에서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김씨의 지적대로라면 2010년 기준 GDP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19.1%에 달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걱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A기업 관계자는 “10대 재벌이 GDP의 80%를 차지한다면 10대 재벌이 아닌 나머지 기업들과 가계, 정부가 기여하는 GDP는 고작 20%라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대 재벌의 고용이 6%에도 못 미친다’는 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기업 관계자는 “김씨가 9988(99%의 중소기업이 88%의 고용을 창출한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한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창출해내는 간접 고용을 간과한 것”이라고 했다.

○‘마녀사냥’ 주장에도 비판 거세

김씨는 미래부 장관 후보자에서 자진사퇴한 이유도 털어놨다. 그는 “정치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내가 그런 (장관직을 수락한) 결정을 한 것은 좀 순진했다”며 “정·관·재계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주로 내 국적을 문제삼아 반대했다”고 썼다. 또 “(후보자 시절) ‘마녀사냥(witch hunt)’에 비유할 수밖에 없는 독기 어린 공격이 인터넷과 주류 언론에 의해 이뤄졌다”며 “나는 스파이고 내 아내는 매매춘에 연루됐다는 식의 중상모략을 당했다”고 ‘격정’을 토로했다. 자신이 사퇴한 배경에는 국적에 대한 비판과 한국 내 민족주의 풍조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21세기에 가장 성공하는 국가와 경제는 민족주의와 관련된 오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출생지에 관계없이 능력있는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이민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나름대로 조언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곱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WP 게시판에는 “김씨는 민족주의를 비난하지 말고 민주주의를 비난하라”, “민간영역이 아닌 정부의 고위직에 임명됐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올라왔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한 것이지 이중국적자에 대한 반감이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들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감정이 실렸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국에 대한 조언은 경청해 볼 만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씨의 지인들은 기고문에 담긴 진심을 읽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순흥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국적보다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이니 닫혀 있지 말고 다양한 인재를 받아들이라는 뜻에서 기고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지인 Y씨는 “우리 사회가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폐쇄적”이라며 “본인이 창조경제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강했는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해 상당히 속상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명/김보영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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