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년 끈 대한문 농성장 철거, 이게 우리 법치수준이다

입력 2013-04-04 17:15   수정 2013-04-04 21:30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인도를 점거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장이 4일 철거됐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핵폐기 촉구 등 온갖 주제의 농성이 연대투쟁이란 이름으로 함께 벌어지며 불법농성의 중심지가 된 지 1년 만이다. 지난달엔 화재가 발생, 문화재의 손실은 물론 큰 인명피해를 초래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덕수궁 앞의 불법 농성 천막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오도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농성장 철거는 극히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서울시내에서 불법 농성이 1년 동안 벌어질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서울시와 중구청은 경찰의 호위속에 출동했다가 20~30명의 농성자에 번번이 밀려나는 등 공권력의 무기력만 보여줬다. 심지어 150명의 경찰을 동원해 농성천막 크기를 재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정당한 법 집행에 미온적이었던 서울시와 중구청, 그리고 작년 선거 때 앞다퉈 이곳을 찾아 머리를 조아렸던 정치인들은 직무유기와 불법행위 방조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한문 앞 불법 농성장은 정당한 행정절차를 외면한 채 떼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준 것이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시민사회는 개인이 자기 의사에 따라 참여,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해나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익을 자동 조절해주는 시장적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생떼주의’가 판치며 법질서를 유린해왔다.

이처럼 법치가 흔들리면 정당한 의사결정 과정은 실종되고 오로지 시위라는 원초적 힘의 크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의사가 결정되고 만다. 따라서 정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과 불능에 빠져들고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식이 무정부적인 혼란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치가 법에 기초해 갈등을 해소하고, 공권력이 정당한 행정력을 집행할 때 비로소 사회엔 질서가 생긴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기반한 시민사회가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이다.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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