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원 20여명 소사장 독립시켜…60년 '가족주의 경영'
설비 수입할 땐 도면부터 받아 자체제작 '기술 자립' 이뤄
우리도 '100년 기업' 키우려면 가업승계제도 개선 절실
해외 법인장은 노조위원장 출신이고, 37년 전 입사한 총무팀 말단 여직원은 이제 경영지원본부장(상무)이 돼 있다. 최고경영자(CEO)는 매일 아침 전 직원과 체조, 청소를 같이하고 점심시간 때는 구내식당에서 그들과 똑같이 식판을 들고 배식을 기다린다.
국내 최대의 자동차용 볼트·너트 업체인 태양금속공업 이야기다. 국내 고장력 볼트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현대·기아자동차의 최우수 협력사인 ‘품질 5스타’ 인증 업체다. GM이 상위 7% 부품업체에만 주는 ‘협력사 최고 품질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 한우삼 회장(69)은 지난달 20일 제40회 상공의날 기념식에서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내 본사 2층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한 회장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태양가족’과 ‘한솥밥 식구’였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훈장은 이번이 처음인가요.
“94년 동탑산업훈장, 2004년엔 노사문화와 관련해 은탑산업훈장, 이번 금탑훈장까지 거의 10년 주기로 ‘금·은·동’을 다 받게 됐습니다(웃음). 회사는 선친께서 다 일으켰는데, 그분은 생전에 동탑산업훈장밖에 못 받으셔서…. 직원들이 자랑한다고 복도 벽에 걸어 놨는데 떼라고 했어요. 선친이 닦아 놓은 고속도로를 저는 안전하게 주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 회장은 이후 창업주인 고 한은영 회장 이야기에 인터뷰의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서재 한 가운데에도 창업회장의 사진이 큼직막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친은 직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한솥밥 식구라거나 태양가족이라고 불렀습니다. 1970년대 중반, 의료보험이 없었을 때 동대문의 이화여대부속병원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직원 누구든지 가족의 수술비까지 회사가 전액 지원해줬어요. 한번은 직원 한 사람의 여덟 살난 아들이 신장투석 치료를 받았는데 당시 돈으로 병원비 700만원을 모두 대준 적도 있었습니다.”
창업회장은 수술비 지원뿐만 아니라 총무팀 여직원을 시켜 부부 사원이었던 아이 부모에게 2년간 매달 50만원을 남몰래 보조해주기도 했다. 30여년 전인 1981년부터 직원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지원했고, 그 대상에는 구내식당 아주머니까지 포함돼 있다. 연건동과 풍납동 공장을 거쳐 1980년대 후반 안산으로 이전할 때는 회사의 자금 지원 아래 216가구의 사원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 직원들의 ‘마이홈’ 꿈을 이뤄줬다.
▷창업회장이 가족주의 기업관을 갖게 된 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평안북도 영변 인근의 개천 출신으로,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하셨습니다. 점심시간에 생선 요리를 먹을 때면 일본 사람들은 몸통, 한국 사람들은 머리하고 꽁지만 먹게 하고, 하루에 밥도 두 끼만 줬다고 하네요. 그때 귀국해서 사업을 하게 되면 ‘직원들을 꼭 가족처럼 대하리라’고 굳게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태양금속공업은 첫 공장인 연건동 시절 때부터 창업회장과 전 직원들이 같이 식사를 했다. 부인이 장을 봐와 가마솥 가득 밥을 지어서 300~400명이 같은 음식을 먹었다. 한 회장과 같은 자식들도 형님뻘의 직원들 틈에 섞여 같이 먹고, 같이 잤다. 직원뿐만 아니라 공장 인근의 우체국 집배원과 파출소 순경들에게 점심도 제공했고, 그 덕에 감사패도 여러 번 받았다.
▷창업회장께선 동탑훈장밖에 못 받았는데, ‘금은동’을 휩쓸었으니 더욱 발전시킨 것 아닌가요(웃음).
“42년 전인 1971년 품질 담당으로 입사했습니다. 선친이 현장에서부터 부대끼면서 경험을 쌓으라고 하셨죠. 솔직히 주변에서 오너의 아들로 보는 시선이 싫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직원들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죠. 그래서 공업진흥청의 품질관리기사 자격증이 도입되자마자 그해에 바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생산관리사 자격증도 있고요. 경영자가 공정을 몰라선 품질이 향상될 수 없습니다.”
한 회장의 ‘품질 제일주의’에도 선친의 흔적이 배어 있다. 창업회장은 기술자립을 위해 외국에서 설비를 들여올 때면 기계 도면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후에 기계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한때는 학교(태양공고)까지 운영하기도 했다.
▷산업훈장 중 한 번은 노사관계 공로로 받으셨는데, 기업문화를 보니 그 이유를 바로 알겠네요.
“올해로 노조 창립 37주년을 맞는데 단 한 번도 분규가 없었습니다. 비결을 물어오면 ‘다 까 보여주면 믿게 된다’는 말 외에는…. 중국 옌타이 공장은 노조위원장 출신이 총경리(사장)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노조가 한국노총 소속인데, 상장 업체의 해외사업장 대표를 노조위원장 출신이 맡은 것은 유일무이한 사례라네요. 노조위원장 시절 리더십과 친화력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정년퇴직 때가 돼서 중국법인 총경리로 발탁했더니 처음엔 임원들이 술렁였습니다. 제 눈을 믿었죠. 지금 참 잘하고 있어요.”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사례가 많다. 10년 이상 근무한 생산라인 근무자를 대상으로 회사가 창업 자금을 지원, 협력업체 대표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소사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미 20명 이상이 독립에 성공했다.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천옥 상무는 총무팀 말단 여직원으로 들어와 30년 이상 근무한 끝에 별을 달았다.
▷안산 상공회의소 회장 등 대외활동도 활발합니다.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과 상공인들 간의 대화 자리가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일본에는 대를 이어 100년, 200년 된 기업들이 많다고 하는데, 부러워만 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가업 승계를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고요. 중소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중견기업으로 커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혜택이 단번에 사라지다 보니 회사를 분사시켜버리는 것 아닙니까. 중견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금융, 세제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 박정희 대통령과 선친 '공장 장미꽃밭' 인연
한우삼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경제인에 대한 포상에서 최고 영예를 안았다. 그의 선친인 창업주 한은영 회장은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있다.
고 한 회장은 하루 종일 금속성 소음에 시달리는 직원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1970년대 말 풍납동 공장 시절부터 공장 안에
화원을 마련했다. 6600여㎡(약 2000평)의 장미밭과 8000그루의 포도나무를 가꿨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송파지역에
산대놀이를 보고 돌아가던 길에 장미꽃이 만발한 공장이 눈에 띄자 예정에 없이 방문했다.
박 대통령을 맞은 고 한
회장은 대화를 나누던 중 고민을 털어놨다. 박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맞춰 프로판 가스탱크를 국산화했는데, 테스트도 못
받아보고 판매 금지를 당했다는 하소연이었다. 고 한 회장은 자동차 범퍼를 만드는 설비를 들여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판
가스통을 만들었는데 수입업자들이 ‘국산은 폭발 위험이 있다’며 당시 상공부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펴 시판조차 못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곧바로 안정성 테스트를 받고 3일 만에 ‘국내 판매 금지’에서 ‘수입 금지’로 규정이 바뀌었다.
이에 힘입어 공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프로판 가스통 재고도 처리할 수 있었다. 고 한 회장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포도나무 8000그루를 육군사관학교에 기증했다.
■ 한우삼 태양금속공업 회장은
한우삼 태양금속공업 회장(69)은 동성고,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친이 경영하던 태양금속공업에 1971년 입사해 1991년 사장, 2003년 회장이 됐다. 2008년부터 안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창업주인 고 한은영 회장의 4남1녀 중 차남이다. 형인 한애삼 명예회장은 하노버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열처리 기술을 통해
국내 첫 고장력 볼트를 개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한달삼 김포CC 사장이 쌍둥이 동생, 한미영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이
여동생이다. 아들인 한성훈 사장(42)도 경영 후계 수업을 받고 있다. 태양금속은 고 한 회장이 1954년 설립한 자전거 부품업체
태양자전기업사가 모태로, 내년에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중국 옌타이와 장자강, 인도 첸나이 등 3개 해외 공장과 미국
디트로이트에 판매 법인을 두고 있다.
한 회장이 취임할 때인 2003년 11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3400억여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그는 매일 오전 7시40분 공장 직원들과 체조, 청소를 함께하고 점심시간엔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직원들과 같은 메뉴로 밥을 먹는다
윤성민/윤정현 기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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