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무조사와 콜베르의 거위

입력 2013-04-24 17:15   수정 2013-04-24 21:57

마른 수건 짜기식 기업 세무조사…투자·고용의 결정을 뒤틀리게 해
이유·기준·계획 명확해야 효과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



국세청이 휘두르고 있는 세무조사의 칼날이 매섭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인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무비리 근절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국세청은 대기업과 대재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세법질서 민생침해사범, 역외탈세자를 4대 지하경제 분야로 지목했다. 특히 매출 500억원 이상 기업과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사후검증 강화를 분명히 밝혔다. 조세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탈세를 엄단하는 조치는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 또한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지하경제 양성화에 관한 것이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넓은 과세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좁은 세원에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보다 넓은 세원에 낮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좋다. 동일한 세수를 거두면서도 세금으로 인한 경제주체의 왜곡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크면 그만큼 과세기반이 좁아진다. 일정한 세수를 얻기 위해서는 노출된 세원에 높은 세율로 과세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과세로 인한 왜곡이 발생한다. 따라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과세기반을 확충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 과세 사각지대였던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과세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대기업의 편법 증여 등과 같은 탈법적인 행태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역시 정당한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세무조사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세무조사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세무조사를 시행하는 원칙이 투명하게 확립돼야만 한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근거를 갖고 어떤 속도로 세무조사를 강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로드맵에 필요하다. 이런 근거 없이 세무조사를 강화하면 말 안 듣는 대상을 혼내주기 위해서 세무조사를 동원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세무조사의 기본은 소득을 적게 신고하면 세무조사를 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득이 높은 경제주체가 소득을 적게 신고할 유인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2012년판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44만개 법인 중 1.1% 정도가 세무조사를 받았다. 2011년 한 해 동안 수입금액 500억원 초과 기업 5185개 중에선 약 18%인 938개의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산술적으로는 대략 5년에 한 번씩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셈이다. 5년 동안 편법 및 탈법이 자행되지 않았다면 추가적인 세무조사로 더 긁어낼 세수가 많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세무조사여서는 곤란하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목적이라면 그동안 정치적인 이유에서 실행하지 못했던 간이과세제도 폐지에 관한 논의가 오히려 합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강화돼야 한다면 납득할 만한 이유와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줄 명확한 계획과 기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세무조사에는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조세당국으로서는 세무공무원들이 해당 법인에 출장나가는 비용이 든다.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도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전문 인력을 통해 세무조사에 대비해야 한다. 기업의 생산에 동원돼야 할 인력이 세무조사 준비에 동원되는 것도 큰 비용이 다. 무엇보다도 큰 비용은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회사의 중요한 결정들이 미뤄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 아래에서 시급히,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할 투자와 고용의 결정이 크게 뒤틀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비용들을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초과부담’으로 정의했다. 국민은 지급했으나 세수로는 이어지지 않는 사회가 치르는 부담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 재상 콜베르는 조세징수의 기술을 거위 털을 뽑는 기술과 같다고 비유했다. 같은 양의 털을 뽑으면서도 거위가 소리를 덜 지르게 뽑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거위가 털을 뽑힐 때 소리 지르는 모양이 즐겁다고 거위를 죽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죽은 거위는 다시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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