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중 1명은 색조화장까지…BBC "치열한 경쟁의 산물"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김청수 씨(31). 그의 손에는 항상 작은 가방이 들려 있다. 운동복과 화장품 5가지를 넣고 다닌다. 퇴근 후 운동을 끝낸 뒤 스킨 로션부터 비비크림까지 바르며 화장을 한다. 3년도 넘은 습관이다. 클럽에 가는 주말이면 눈화장도 한다. “멋을 안다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그는 말했다.
화장하는 한국 남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작년 스킨 로션 에센스 등을 포함한 기초화장품은 한국에서 4억9000만달러(5500억원)어치가 팔렸다. 한국은 전 세계 판매액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한국 남성 한 사람이 보유한 기초화장품은 평균 2.3개. 미국이 10명 중 1명, 유럽은 10명 중 4명 정도만 기초화장품을 쓰고 있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기초화장품뿐 아니라 피부 색을 바꾸는 색조화장품을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발표한 화장품 인식 조사에 따르면 남성 10명 중 1명이 비비크림 등 색조화장품을 쓰고 있다.
화장하는 남자 중에는 대학생 같은 신세대만 있는 게 아니다. 40~50대 중년이나, 군인들도 화장품 가게를 찾는다. 지난 18일 서울 신촌 더페이스샵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던 김경민 상병(21)은 “야외훈련이 많은 군대에서 피부 보호를 위해 화장은 필수”라며 “휴가 나올 때마다 몇 개씩 사서 동료들과 나눠 쓰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남성화장품 시장은 큰 폭으로 커지고 있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기초화장품과 비비크림 등 색조화장품을 포함한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올해 1조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5700억원에서 5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한 여세를 몰아 올해 1조원을 돌파하는 것이다. 작년 남성화장품 브랜드로 출원된 상표는 39개로 2년 전보다 85% 늘었다.
영국 BBC는 한국의 화장 열풍은 한국사회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준다고 최근 보도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나태하거나 변화에 둔감한 것으로 비쳐질까봐 화장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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