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30초만에 반죽 뚝딱! 소스 얹고 장작화덕에 쏙~피자의 고향서 맛본 참맛

입력 2013-04-28 14:51  

[셰프 박찬일의 좌충우돌 음식 여행]
이탈리아 피자는 다 맛있다?
아무거나 시키면 낭패 볼 수도

오후 7시 넘어서야 문 열어
도전 두렵다면 마르게리타가 안전
안초비·해물 피자는 '글쎄'

1인당 1판씩 먹는 게 정석
피클 없고 알아서 잘라먹어야 이탈리아 피자












내가 팔뚝을 그릴에 지지면서 고기를 굽고 파스타를 말고 있을 때에도 어김없이 전화가 울린다. 일을 하는 중이라 무시하려고 해도 진동이 허벅지를 연신 긁는다. 이거 혹시 집안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아닌가 싶어 손을 씻고 휴대폰을 꺼낼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듣게 된다. “어, 친구야. 나 이탈리아 가게 됐는데 어디 가서 뭐 먹으면 좋을까? 로마에 맛있는 식당 좀 예약해 줄 수 있을까?”

힘이 쭉 빠진다. 글쎄, 나는 이동식 이탈리아관광청 서울사무소가 아니라니까. 화가 치미는데,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어디 가면 뭐가 맛있다고 소개하는 인터넷 블로그도 책자도 많다. 아니면 아무 데나 용감하게 들어가서 눈치껏 시켜 먹기도 어렵지 않다. 밥과 반찬이 기본이고 국수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아무래도 선뜻 들어가기엔 용기가 필요하고, 게다가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앞선다. 게다가 영어가 통하는 이탈리아 식당은 거의 드물지 않은가(한 끼에 20만원쯤 하는 데선 영어가 통하지만). 그래서 친구야 오븐에 팔뚝을 지지든 말든, 파스타가 불어 터지든 말든 전화를 걸어댄다. 이참에 이탈리아에서 밥 사먹는 요령을 좀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양한 요리 천국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알다시피 맛있는 음식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다. 알프스를 넘어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소시지, 햄, 소시지, 햄, 소시지, 햄 … 이 연속되는 독일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단 하루도 같은 걸 먹지 않는다. 중간에 샌드위치를 먹더라도 고명이 달라진다. 이탈리아인이 대화를 나누는 걸 잘 들어보면 상당 부분이 먹는 얘기다. 저녁 황금시간대에 요리 방송을 하는 나라다(물론 그날 축구에서 논란을 빚은 오프사이드 판정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당연히 맛있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그런데 막상 우리 같은 여행자가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른다. 일단 먹는 걸 파는 집만도 수십 가지나 된다. 바르, 카페테리아, 타볼라 칼다, 파니노테카에선 가벼운 음식을 판다. 정식 식사를 파는 곳은 리스토란테, 트라토리아, 피체리아, 로스티체리아, 오스테리아, 비스테케리아…. 끝도 없다. 이게 다 식당을 의미한다. 물론 처절하게 깨지면서(?) 터득한 바다. 그저 식당과 레스토랑, 중국집과 분식집이면 대충 다 되는 한국과 비교하면 그 복잡한 식당 사정이 짐작 될 것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마음 먹고 들어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한번은 이탈리아 북부를 헤맬 때였다. 이탈리아에선 기차여행을 많이 하게 된다. 전국망이 촘촘하게 깔려 있고, 요금도 괜찮다. 그렇게 한 북부 도시에 내렸다. 오후 3시. 배가 많이 고팠다. 아무리 음식천국 이탈리아지만 기차간에서 뭔가 맛있는 걸 먹을 방법은 없다. 결국 역전에서 식당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웬걸, 문 연 집이 하나도 없다. ‘노’를 뜻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제스처, 집게손가락을 코앞에서 흔들어댔다. “지금은 영업을 안 합니다.”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가도 다 밥을 파는 한국이 그리웠다. 결국 한 바르(bar)에 들러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이탈리아에서 오후 3시에 제대로 된 밥 먹을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어.”

실제로 그렇다. 대도시 역전의 싸구려 샌드위치나 길거리에서 파는 말라 비틀어진 피자 조각이라면 모를까. 더운 음식, 특히 파스타를 먹고 싶었던 터라 결국 오후 6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오후 6시가 되었다고 꼭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피자 한 장을 먹고 싶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피자는 기본 아닌가. 슬슬 동네를 돌며 피자집을 물색했다. 사전에 조금 배운 대로 둥그런 장작 오븐이 있는 집을 찾았다. 두어 집을 보았는데, 여전히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월요일도 아니고(대개 월요일에 식당이 쉬는 곳이 많다), 왜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 내 의문은 7시가 되어 풀렸다. 하나둘 사람들이 피자집으로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나중에 생긴 긴 줄의 첫 번째 손님이 되었다. 일반 식당은 6시에 대개 열지만, 피자를 파는 피체리아는 7시가 돼야 여는 게 보통이었던 것이다. 7시라고 해도 막상 들어가면 손님이 많지도 않다. 대개는 8시, 남부 도시의 여름에는 9시나 10시에 피자집에 모이는 게 정석이란다.












○피자 종류만 수십 가지…만드는 기술은 묘기
이탈리아 가면 피자집은 다 맛있을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천만의 말씀이었다. 세 집을 가면 한 집은 못 먹을 맛이었고, 메뉴 3개 중 2개는 입에 안 맞았다. 자, 피자집으로 가볼까. 이탈리아의 피자집은 낮에도 거리에서 파는 조각피자(대개 네모나거나 아주 작은 원형)를 제외하고 저녁 때에만 연다. 그래서 낮에 가보면 신참 요리사가 장작에 불을 슬슬 지피는 것만 구경할 수 있다. 이탈리아 피자 화덕 중 8할은 장작을 땐다. 일반 전기오븐이라고 하더라도 맛있는 집은 맛있지만, 사전 정보가 없다면 장작 화덕을 찾는 게 확실하다.

그런데 어떤 피자집이 맛있는지 어떻게 알까. 물론 동네의 평판이 중요하다. 손님이 많으면 대개는 맛있다. 여기에 장작 화덕을 갖추고 있고, 피자 반죽을 펴는 기술자가 나폴리 사람처럼 보이면 더 확실하다. 이 기술자의 묘기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부분 홀에서도 볼 수 있는 오픈 주방이게 마련인데, 정말 번개처럼 반죽을 편다. 이탈리아에서 피자 좀 먹으면 한국에서는 답답해서 못 시킨다. 피자를 밀대로 밀고 펴고 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좀이 쑤시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피자기술자는 정말 반죽을 갖고 논다. 손에 밀가루를 풀풀 뿌리고 허옇고 커다란 반죽을 쥐고 금세 늘려버린다. 그리고는 국자로 토마토소스를 번개처럼 끼얹고 토핑을 올려서 삽으로 푹 뜨는 것이다. 이내 화덕으로 처박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30초 미만, 나도 모르게 어허! 감탄을 하고 말았다. 이걸 10분씩 주무르면 맛이 있을 리 없다.

○이탈리아 피자에는 피클이 없다?

그런데 어떤 피자를 시키느냐도 중요하다. 보통 피자 메뉴는 스무 가지도 넘는다. 반죽은 같고, 올라가는 고명만 달라지므로 얼마든지 메뉴가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피자집마다 제각기 고유한 간판스타가 있다. 이를 테면 창작 피자가 있다. 한국식 매운 고추를 얹은 피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러 번의 실패를 맛본 다음 요령이 생겼다. 첫째, 애매할 땐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마르게리타를 시킨다. 이것이야말로 피자의 원형이기도 하다. 토마토소스에 모차렐라 치즈, 바질만 얹은 단순하면서도 맛있는 피자다. 고명이 심심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무난한 선택이며 값도 제일 싸다.

둘째, 해물 피자는 시키지 않는다. 별로 구미에도 맞지 않고 물도 좋지 않다. 대개 냉동 해물을 쓴다. 셋째, 소시지를 얹은 피자를 시킨다. 부르스텔이라고 발음하는데, 독일식 소시지를 잘라서 얹어준다. 한국인 입에 딱 맞았다. 넷째, 안초비를 좋아한다고 함부로 시키면 낭패 본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달리 아주 짜고, 진한 향취를 풍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외국인이 현지에서 김치를 먹다가 한국에서 진짜 전라도 김치를 먹게 되면 처음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다섯째, 네 가지 치즈의 피자는 먹을 만하다. 단 상당히 짜기 때문에 각오(?)할 것. 여섯째, 보통 피자 치즈 말고 신선한 모차렐라 치즈를 얹으면 훨씬 맛있다. 주문할 때 ‘모차렐라 프레스카’를 요청하면 알아서 바꿔준다.

이탈리아 피자집에서 겪는 혼란은 혼자서 갔을 때 일어난다. 피자 한 판을 먹기엔 애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선 대개 나눠 먹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반 판을 시킬 수도 없고. 그러나 그런 걱정은 이내 풀린다. 옆자리의 다른 손님들, 심지어 어린 여자 아이도 한 판을 시켜서 혼자 먹는 걸 말이다. 이탈리아엔 피자를 나눠 먹는 풍습이 없다. 우리야 어쩌다 먹는 것이니까 나눠서 먹고, 또 대개는 미국식의 두툼한 양을 자랑하지만 이탈리아 피자는 얇기 때문에 혼자 한 판을 먹어야 한다. 심지어 애피타이저를 먹고 피자 한 판씩을 해치운다. 피자집에서도 전채를 먹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피자집에서 피자는 절대로 잘라서 나오지 않으며, 피클도 물론 없다는 사실, 명심해야 한다. 아, 피자도 포크 나이프로 알아서 자르고, 그것도 피클 없이 먹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박찬일 셰프는 1998년부터 3년 동안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소재 요리학교인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의 ‘요리와 양조’ 과정을 이수했다. 로마의 소믈리에 코스와 슬로 푸드로마지부 와인과정에서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뚜또베네’ ‘라꼼마’ 등을 선보였다. ‘어쨌든 잇태리’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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