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가 정책금융기관 재편 과정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우선 특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피해가는 게 쉽지 않아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 최경환 김정훈 이진복 등 새누리당의 실세 의원들이 각자 방향을 달리한 선박금융공사법과 해양금융공사법 제정안, 그리고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한 점도 문제를 꼬이게 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자칫 ‘산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책금융 재편의 최대 난제”
금융위는 지난달 30일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의 첫 회의를 열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 등 관련 부처의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선 그러나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하면 수출입은행(기재부 소관), 무역보험공사(산업부), 산업은행 및 정책금융공사(금융위) 등에서 선박금융 관련 업무를 이관하는 등의 기능재편이 필수적인데 사전조율이 안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부처 간 극심한 ‘제식구 감싸기’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WTO 규정을 피해가는 묘안을 짜내는 것도 쉽지 않다. 금융위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만큼 TF 논의와 용역 결과를 토대로 가칭 ‘선박금융공사법’ 제정안을 독자적으로 마련해 9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안에 특정 산업을 명시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주는 내용을 담으면 무역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위 안팎에서는 ‘선박금융공사법’이란 법안명을 바꾸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공약을 지킬 수는 없는 만큼 무역 분쟁이 예상되는 사안에는 공직자들이 ‘직언(直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박과 해운분야에 대한 지원은 정책금융기관 간 업무 중복을 없애는 방향으로 비효율을 제거하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실세 의원들은 입법으로 ‘충돌’
국회에선 완전히 판이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 내 정책금융기관 재편 논의와 별도로 여당 의원들이 내용이 상충되는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쪽에선 수출입은행의 선박금융 업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다른 쪽에선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같은 당에서조차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부산이 지역구인 이진복 의원은 선박금융공사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해운과 조선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금융공사가 2조원을 출자해 부산 본사를 두는 선박금융공사를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선박금융공사가 선박금융채권을 발행하고, 필요 시 국회 동의를 받아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역시 부산지역 의원인 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장은 ‘해양금융공사법안’을 발의했다. 정부가 출자하는 자본금 규모가 3조원으로 더 많고, 항만 개발과 관리업무까지 관장하도록 하는 내용에서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 두 법안대로라면 수출입은행의 선박금융 업무 축소가 불가피하다.
이와 달리 최경환 의원이 발의한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소위까지 통과했다. 법안엔 △국제협력은행으로 명칭 변경 △자본금 확대(8조원→15조원) △증권인수·투자 등 투자은행(IB) 업무 대폭 확대 △타 금융기관과의 경쟁금지 규정 완화 △대출규제(최장 대출 30년, 최장 상환기간 30년 폐지) 완화 등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는 정책금융기관 재편 논의가 어디로 흘러갈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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