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규모, 변화에 유연한 대처"… 융합·창업 활성화
서강대 학생들 3500명이 페이스북 친구 'SNS 총장'
"임기내 국내 탑5 대학 회복 자신있다"
평범한 모범생 아닌 걸출한 인재 육성할 것
하버드의대와 서울에 연구센터 곧 설립
<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서강을 다이나믹하게 바꿀 겁니다. 그동안 서강대는 조용하고 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죠. 앞으로 잘하는 부분은 적극 알리고 학교 분위기도 동적으로 바꾸겠습니다. 착실한 모범생보다 걸출한 인재를 배출할 겁니다."
올 3월 취임한 유기풍 서강대 신임 총장(61·사진)은 거듭 변화를 강조했다. 학교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놓겠다는 포부다. 어법도 화통하고 시원시원했다. 그는 "서강대란 이름만 남겨놓고 우리가 해온 전통을 모두 의심해 보고,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 총장은 이공계 교수답게 대학사회 변화의 신호를 IT와 창업에서 찾았다. 그 자신이 학내 벤처 창업을 이끈 인물. IT 혁명과 창업 트렌드로 인해 대학의 교육과 인재 배출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액티브'와 '다이나믹'의 요체다.
서강대의 변화는 지금이 적기다. 동문인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했고, 서강대를 설립한 예수회(가톨릭)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도 주목받고 있다. 유 총장은 "좋은 타이밍에 학내외에서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크다" 며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학교를 과감하게 바꿔볼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단점을 보기보다 장점 극대화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는 "작은 학교 규모는 스마트 시대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요소" 라며 "서강대의 다전공제, 학생설계 전공 등은 작기 때문에 먼저 할 수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의 기본은 소통이다. 유 총장은 '페이스북 친구'가 3500여 명에 달한다. 서강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일상적 대화부터 진로 고민까지 아우르는 'SNS 총장'의 힐링 솜씨에 반했다. "IT 기기에 친숙한 이공계 교수에다 군 시절 '타자병'으로 복무한 경험이 빛을 본 것 같다"며 웃는 유 총장을 2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 올 3월 취임했습니다. 구상 중인 학교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서강대는 1960년 서구화 대학 교육을 받은 서양 신부들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반 세기 동안 엄격한 학사관리로 서구형 대학교육의 전형을 세웠다고 자부합니다. 당시엔 국내 명문이란 대학들도 학사관리가 엄격하지 않은 분위기였죠. 이제 또 다른 50년, 서강대가 대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리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 취임 후 학교 분위기가 동적으로 바뀌는 것 같은데요.
"학교를 설립한 예수회 교육이 아방가르드(전위적)한 면이 있습니다. 그 정신을 살려 대학의 변화를 이끌어갈 겁니다. 학교 규모가 작아 유연성 측면에선 유리합니다. 변화하려고 할 때 몸통이 크지 않아서 다행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 구체적 변화의 방향을 설명해 주시죠.
"심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서강대란 이름만 남겨놓고 우리가 해온 전통도 의심해 보자', 그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IT 혁명이 대학도 엄청나게 변화하게 했죠. 교수가 한 시간 내내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시험 보는 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가 됐습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단일 방향에서 양방향으로 가야죠.
학생들을 평가로 줄 세우기 하면 창의적 사고가 안 나와요. 착실하게 공부 잘하는 균일한 인재보다 다는 아니더라도 걸출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철학의 변화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론과 피드백이 가능하고 체험, 창의적 활동이 가능한 교육환경이 필요합니다. 창업을 비롯해 창작활동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캠퍼스 분위기로 바꾸겠습니다."
- 잘해 온 것은 지키되 확 바꾸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렇죠. 최근에 변화의 목소리가 강합니다. 지금의 방식 가지곤 안 되겠다 생각해요. 그간 서강대는 정적이고 조용한 이미지가 짙었습니다. 학교의 좋은 면도 제대로 못 알린 부분도 많죠. 앞으로 장점을 공격적으로 알릴 겁니다. 마침 상황이 좋아요. (웃음) 동문인 박근혜 대통령도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학교를 설립한 예수회 출신입니다."
- 말씀대로 주목 받는 시기입니다. 대외 활동이나 동문 네트워크 강화 계획이 있습니까.
"적극적으로 바꾸겠다는 건 재정 분야부터 적용됩니다. 물론 모금 활동도 열심히 해야죠. 하지만 재정 부담을 스스로, 열심히 해결하는 게 제1원칙입니다. 펀드 레이징이 아니라 '펀드 메이킹' 하자는 거죠. 교수들의 연구역량을 키워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고 연구개발(R&D)을 통한 산학협력으로 특허나 라이센싱도 따내도록 장려할 겁니다.
산학협력단 기술지주회사의 경우 현재 11개 자회사를 설립했어요. 총장 임기 동안 최소한 50개 정도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해외 명문 선진대학들을 보면 재정의 30~40%를 교수 연구 결과와 산학협력 라이센싱으로 충당하고 있죠.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 같은 사례가 그렇습니다."
- 국내 대학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얘기인가요.
"서강대엔 다른 대학에 없는 게 있어요. 5년 전에 만든 '서강 알바트로스 인베스트먼트'란 창업투자회사(창투사)입니다. 규모는 600억 원 정도, 창업 활성화에 투자하고 있죠. 지난해 11개 자회사에서 30억 원 정도 수익이 나왔어요. 앞으로는 창업사관학교 개념의 '서강 스타트업 아카데미'(가칭) 활동을 통해 재정의 상당 부분을 자체 조달할 계획입니다.
국내 사립대의 경우 학생 등록금 의존율이 약 70% 수준이에요. 너무 높아요. 교수들이 좀 더 발벗고 나서야죠. 단순 연구가 아닌 R&DB, 즉 R&D에 비즈니스(사업)까지 연결되는 형태가 돼야 합니다. 서구형 대학의 R&BD를 한국형으로 이식하는 거죠. 다행히 제가 엔지니어 출신 총장이고 창업 경험도 있어 힘을 쏟아볼 생각입니다."
- 창업 네트워크가 탄탄한 편입니다.
"코스닥에 30여개의 동문 상장기업이 있어요. 단순 비즈니스보다는 '기술창업' 위주로 동문들을 학생들 멘토로 연결하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서강대가 동문이 많지 않은 편이라 사실 위에서 끌어주는 경우가 잘 없어요. 그래서 회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창업을 많이 하더군요. (웃음) 서강대 출신이 벤처 정신이 강해요. 그걸로 승부할 생각이 있습니다."
- 동문 파워 측면에서 규모가 작으면 어려움도 있습니다. 몸집을 불릴 계획은 없나요.
"글쎄요. 대학이 '규모의 경제'를 하는 이유가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측면이 크죠. 자급자족 하려면 정원 1만5000~2만 명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 시대가 되면서 대학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잖아요. 오히려 큰 대학이 불리한 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서강은 규모가 작아서 다른 대학은 흉내 못내는 다전공제, 학생설계 전공 같은 것도 가능했어요."
- 규모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말씀이죠.
"극소수 창조적 인재가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니죠. 오히려 학생들을 창의적으로 길러내기엔 작은 규모가 더 유리한 시대가 됐어요. 서강에 필요한 건 명문 교육을 하기 위한 인프라 확장이 더 큽니다.
국내 대학의 특성상 종합대에 의과대학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서강대에 의대는 없지만 이 부분은 좀 다르게 봅니다. 현대의학은 임상, 의학 연구, 장비 개발 3개 분야로 크게 나뉘죠. 서강대엔 이미 장비 개발 분야 실력을 갖추고 있어요. 곧 하버드 의대와 손잡고 서울에 연구센터를 설립합니다. 종합병원, 기업체까지 함께하는 4자 컨소시엄 형태가 될 겁니다."
- 서강대 브랜드를 강화할 특성화 분야는 어떤 게 있습니까.
"제가 공과대학장 시절부터 해오던 게 융합입니다. 스마트 시대의 화두가 융합 아닙니까? 여기서 말하는 융합은 근종 간이 아닌 '이종(異種) 간의 큰 융합'이에요. 전자공학과 화학공학의 융합이 아니라 컴퓨터공학과 예술의 융합(아트&테크놀로지), 이렇게 크게 가는 거죠. 산학협력단 산하에 서강미래기술연구원(SIAT)을 세운 것도 이런 노력의 하나입니다.
전공 분야를 초월한 융합으로 반도체,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이런 분야 대형과제를 많이 수주해 성과를 냈어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갖고는 더 이상 일자리 창출이 안 되거든요. 최근 '창조경제'와 비슷한 맥락이죠. 다행히 서강대는 SIAT 등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오던 내용입니다. 전체 틀을 다듬어 보강하고 인력도 충원해 더 발전시킬 겁니다."
- 동문인 박근혜 정부의 대학 정책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습니다.
"사립대든 국립대든 고등교육의 상당 부분이 국가 책임이란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독일은 무상교육, 일본도 사립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어요. 미국도 주 정부 지원이 있는데 국내 사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이 너무 적어요. 교육부가 너무 대학에 간섭하기보다는 지원을 잘해주는 방향으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죠.
물론 공짜로 대학에 지원해달란 건 아니죠. 미국은 국립과학재단(NSF)을 통해 천문학적 금액을 대학에 지원합니다. 이건 연구비죠. 연구비는 경쟁을 통해 가져오는 것이구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봐요. 한국연구재단 등을 통해 대학에 지원하는 연구비 총량을 늘리는 방향이 맞지 않겠습니까."
- 정부 예산에서 대학 지원은 후순위로 밀리는데요.
"그것도 문제지만 대학 간 경쟁의 룰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KAIST는 세금으로 지원 받으면서 각종 국책사업에 선정돼 연구비를 더 받아요. 거기에 연구비 수주에 유리한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죠.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일본은 국립은 국립끼리, 사립은 사립끼리 경쟁시키거든요.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거죠."
- 서강대는 서비스와 만족도가 높은 대학으로 꼽힙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원칙에 충실하고 학교 행정에 예외가 없는 대학. 이게 비결 아닌가 싶어요. 각종 조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제가 보기엔 오히려 예전만 못하단 느낌도 있어요. 서서히 학생 중심에서 교수 중심으로 흘러온 게 아닌가, 경계합니다. 그래서 다시 학생 위주, 고객 중심으로 원위치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총장께서도 SNS를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3500명 정도 돼요. 대부분 우리 학생들이에요. 생일 맞은 학생들에게 SNS로 매일 축하 인사 해줬더니 파급 효과가 엄청납니다. 우리 학생 200명에게 특강하러 갔는데 절반 정도가 제 '페이스북 친구'더군요. (웃음) 아마 제가 국내 대학 총장 가운데 학생들과 SNS로 소통을 가장 왕성하게 하지 않나 싶어요.
SNS를 열심히 하게 된 계기는 '힐링'이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땐 '열심히 공부해서 가난을 벗자'는 생각들이 강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요즘 학생들이 불투명한 미래에 더 힘들어합니다. 지식 교육 뿐 아니라 인성이나 체력도 기르는 교육을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조용했던 서강에서 시끌벅적한 서강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 학생들 반응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해요. 최근 올려놓은 글을 보면 '젊음에게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벚꽃은 만개하는데 중간고사라니 아뿔싸…' 이런 일상적인 글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스마트 기기 조작에 익숙한 공대 교수라서 득을 본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타자병으로 복무한 경험도 빛을 봤죠. 저, 독수리 타법 아닙니다. 타자 치는 속도 빨라요. (웃음)"
- 동문 대통령에게도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 해서 논란이 많았잖아요. 서강은 대선 후보 시절 때부터 '정중동'을 강조했어요. 학풍에 맞게 조용했었고, 앞으로도 동문으로서 뭘 해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역사에 난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기원합니다. 늘 그랬듯 원칙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대통령 모교라 역차별 받는 일만 없었으면 합니다. (웃음)"
- 사회적 평가에서 서강대 목표는 어느 정도입니까.
"제가 1984년 서강대 교수로 왔어요. 그때 국내 톱5에 꼭 들었습니다. 종합대뿐 아니라 KAIST, 포스텍 같은 곳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거창한 목표보다는 우선 그 정도를 목표로 삼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학교 자랑 좀 해주시죠.
"100세 수명 시대가 되잖아요. 25년 공부해 25년 직장생활 후 퇴직해 50년 사는 시대가 되는 겁니다. 이제 서강대는 대기업 신입 사원 양성하는 교육을 그만하려고 해요. 서강에 와서 교육받으면 100세까지 인생을 정력적으로, 즐겁게 살 수 있는 정신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학으로 발돋움 하려 합니다.
그래서 서강은 교수의 주입식이 아닌 '자기 동기 부여'가 확실한 교육을 지향합니다. 교수가 학생에게 모든 걸 가르칠 생각은 하지 않아요. 왜 공부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고, 목마르게 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줄 세우지 않고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서강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 유기풍 총장은…
경기도 양주 출생.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서강대 교수로 임용돼 대외부총장 기획처장 학생처장 공대 학장 등의 학내 보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까지 산학부총장으로 재임하며 '서강라면' '서강홍삼정' 등을 개발해 벤처 창업을 주도했다. 올 3월 총장에 취임해 4년간 서강대를 이끌어 간다.
글 =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 사진 = 변성현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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