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망언·군국주의 행보…국내외 비난에도 거침없어
7월 참의원 선거가 분수령…자민당 압승 땐 우경화 날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가면을 벗어던졌다. 극우주의자라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근 아베를 포함한 일본 자유민주당 정권의 우경화 행보는 일일이 열거하기에 숨이 가쁠 정도다. 아소 다로 부총리를 포함한 4명의 현직 각료와 200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버젓이 참배했고, ‘주권 회복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 지난달 28일 행사에서는 군국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덴노(天皇·일왕) 헤이카(陛下·폐하) 반자이(萬歲·만세)’라는 구호까지 합창했다. “침략의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등 망언 행렬도 줄을 잇는다.
아베 내각의 최종 목적지는 ‘전쟁 포기’를 규정한 이른바 ‘평화헌법’ 개정이다. 오는 7월 치러지는 참의원(상원) 선거가 분수령이다. 이번에도 자민당이 압승하면 아베의 극우정책은 날개를 달게 된다. 한국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언론들도 일제히 비난 대열에 동참했지만 아베의 신념은 요지부동이다.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아베의 의욕이 동북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아베가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
아베는 두 권의 책을 썼다. 하나는 첫 총리 취임을 앞두고 2006년 7월 내놓은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國へ)’. 지난 1월에는 ‘새로운 나라로(新しい國へ)’라는 책도 출간했다. 제목이 비슷한 만큼 내용도 거의 복사판이다. 앞뒤에 약간의 내용이 추가됐을 뿐이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일본을 위해 싸우는 정치가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결연한 전사 이미지다. 아베가 투쟁을 통해 쟁취하려는 ‘아름다운 나라’의 기본 모델은 패전 이전의 일본이다. 무력을 앞세워 전 세계로 진군하던 그때의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복고주의적 냄새가 강하다.
저변에는 ‘일본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의 책에 나오는 내용 한 토막. “일본은 패전 후 60년간 국제공헌에 노력해 오며 호전적인 자세를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국가 간에 문제만 생기면 과거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꾹 참으며 오로지 폭풍우가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 결과 걸핏하면 우리(일본)에게 잘못이 있는 듯한 인상을 세계에 심어 왔다.”
함께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에 비해서도 일본이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옛) 서독은 같은 패전국인데도 주권 회복과 동시에 국방군을 창설했고 통일까지 36차례나 헌법을 개정해 징병제를 채용하고 유사 사태에 대비한 법도 정비했다.” 일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인식 속에는 당연히 전쟁에 대한 책임이나 침략에 대한 반성 등이 자리 잡을 공간은 없는 셈이다.
○예정된 수순, 우려되는 결과
아베의 ‘극우 본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기시 노부스케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3년간 총리로 활동했던 인물로 아베의 외할아버지다. 기시는 ‘A급 전범’으로 몰릴 정도로 우익적 성향이 강하다. 정치가로 활동하면서 줄곧 매달렸던 주제도 헌법 개정과 ‘자학적 역사관’의 수정이다. 아베는 이런 외할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는다. 극우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베는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등 망언을 일삼았다. 야스쿠니 신사도 거침없이 참배했다. 그런 그가 두 번째로 일본 총리가 됐으니 일본 정치판의 ‘우향우’는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본색을 드러낸 시점이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났다.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안전운행’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폭죽이 일찍 터졌다.
아베의 본능을 조기에 일깨운 요인은 크게 세 가지라는 분석이다. 하나는 지지율의 고공행진. 작년 12월 집권 이후 계속 지지율이 상승해 지금은 70%를 훌쩍 넘는다. 대규모 양적완화를 골자로 한 경제정책(아베노믹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덕분이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중국의 세력 확대에 위협을 느끼는 일본인이 증가한 것도 우경화에 불을 붙인 요인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인해 늘어난 사회불만 세력도 극우를 싹 틔운 토양이다.
○참의원 선거가 관건
아베의 궁극적 목표는 개헌이다. 구체적으로는 ‘군대 보유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제9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일본 역시 헌법 개정 절차는 까다롭다.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 국민투표에서 유효 투표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헌법 개정이 가능하다.
중의원만 놓고 보면 개정안 발의는 어렵지 않다. 작년 총선에서 자민당은 480석 가운데 294석을 얻었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일본 유신회와 다함께당 등을 합하면 총 368석으로 중의원의 3분의 2를 훌쩍 넘는다. 문제는 참의원이다. 자민당의 현재 참의원 의석은 84석으로 민주당(84석)과 같다. 전체 의석(242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민당의 시나리오는 ‘2단계 개헌’이다. 우선 개헌안 발의 요건(헌법 96조)을 완화하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 이를 기반으로 헌법 9조 개정에 도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헌법 개정이 그리 쉽게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당수 일본인이 여전히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화헌법의 근간인 ‘헌법9조’ 개헌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은 52%로 찬성(39%)을 앞섰다. 해외의 시선도 따갑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베의 국수주의는 일본의 경제회생에도 방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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