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현윤 로스쿨협 이사장 "로스쿨 변호사 '7급 공무원' 굴욕 아니다"

입력 2013-05-07 11:17   수정 2013-05-07 11:37

로스쿨-연수원 변호사 법률지식 격차 있지만 3~5년 내 극복가능
사시 합격해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건 로또 확률 미화한 포퓰리즘
변호사시험 계속되면 사시 합격자 기준 학교서열 바뀔 조짐 보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논란은 수년째 '뜨거운 감자'다. 비싼 등록금으로 인한 '돈스쿨' 오명에 '사법시험 출신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불신까지. 여기에 지난달 26일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돼 올해에만 로스쿨 출신 변호사 1538명이 쏟아져 나왔다. 과잉인력이란 비판이 되풀이 제기됐다.

최근엔 부산시가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겨냥해 발표한 '행정직 7급 공무원' 선발 방침에 로스쿨 출신들이 몸값 하락을 우려해 보이콧을 종용하며 논란이 일었다. "법조서비스 문턱을 낮춘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와 달리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혔다.

바람 잘 날 없는 로스쿨이 세간의 오해와 편견을 벗고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경닷컴이 7일 신현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58·사진)을 만나 물어봤다.

연세대 로스쿨 원장을 맡고 있는 신 이사장은 "기존 변호사 처우를 생각하면 7급 채용이 익숙치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많은 법조인을 배출해 사회 각 분야에 법조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스쿨 취지를 감안하면 직급이 낮다 해서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특장점을 봐 달라고 주문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로스쿨에 대한 부정적 시각보다 관심과 격려, 지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신 이사장은 "로스쿨 출신의 학습 기간이 짧기 때문에 기존 사법연수원 출신에 비해 법률지식이 다소 부족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변호사가 된 후 3~5년이 지나면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법조에 국한되지 않은 각종 전문지식에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은 점은 사시 출신에겐 없는 로스쿨 출신만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로스쿨 제도를 폐기하고 사시를 존속시키자는 주장이나 비(非)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변호사예비시험'을 도입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국민을 호도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시나 예비시험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로또와 같은 확률에 젊음을 바치는 시험을 미화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 예고대로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로스쿨 입학정원(2000명) 대비 75% 선이다.

"정확히 정원 대비 76.9%, 응시인원(2046명) 대비 75.2%의 합격률이다. 응시인원 기준으로는 지난해 1회 시험 합격률 87.2%에서 많이 낮아졌다. 어쩔 수 없이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에서 기준을 정했지만 로스쿨 제도의 본질적 취지와는 어긋난다. 로스쿨 제도는 시험을 통한 선발과 다르다. 궁극적으로 교육을 통한 양성, 자격고사 성격 시험이 맞는 방향이다."

- 탈락자의 재응시가 허용되므로 '실질 합격률'은 갈수록 낮아지는 것 아닌가?

"아니다. 정확한 문구를 살펴보면 '입학정원의 75% 이상'으로 돼있다. 75%(1500명)가 마지노선이란 얘기다. 이번에도 합격자가 1538명인데, '+38명'이 중요하다. 공식 언급은 없었지만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에서 '응시자 수를 고려해 합격률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양해가 이뤄졌다. 세간의 우려처럼 무더기 탈락자가 발생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

- 로스쿨 학생들이 합격률 90%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학생들 입장에선 그럴 수 있지만 응시자 대비 90%는 지나친 감이 있다. 과도한 합격률은 오히려 변호사시험과 응시자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질 관리를 해야 한다."

- 변호사시험 합격률 적정선은 어느 정도인가.

"인원을 정해놓고 뽑기보다 시험 성적으로 합격 여부를 정하는 방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건 로스쿨 3년 과정을 성실히 이행했다면 충분히 합격 가능한 시험 수준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은 고도의 법률지식을 요구하는 사시와는 태생과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건 1회보다 2회, 2회보다 3회 시험에서 법률 학습 열기가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수준이 떨어진다는 일각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다. 로스쿨 학사관리 엄정화를 비롯해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교수 개별지도까지 이뤄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로스쿨이 법학교육기관의 위치를 확고히 할 것으로 본다."

- 최근 '7급 채용 논란'이 일었다. 어떻게 보나.

"솔직히 기대를 안고 로스쿨에 진학한 입장에선 7급이라 하면 서운할 수 있다. 서운하다기보단 '익숙치 않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4년제대를 졸업하고 3년의 전문대학원 과정을 마친 인력 아닌가. 이전엔 고졸들이 7급 공무원으로 임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의 기본 취지는 많은 법조인들을 길러내 사회 각 분야에 스며들게 하자는 데 있다. 그렇다면 눈앞의 형식이나 외양에 집착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해 실질적 법치주의 정립에 기여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사시 출신에 비해 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시각이 아직 강하다.

"사법연수원 출신이나 로스쿨 출신이나 능력의 총량은 비슷하다. 다만 능력이 발현되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 연수원 출신은 풍부한 법조지식이 강점이다. 반면 로스쿨 출신은 다방면의 전문성과 사회적 경험, 어학 능력을 갖췄다. 물론 학습기간이 짧아 처음엔 법률지식이 다소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3~5년 변호사 생활 후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어쨌든 변호사에겐 법조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과거엔 상식과 법조지식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사회가 다원화, 글로벌화된 시대엔 법률 문제를 해석·적용하는 데 있어 전문 분야 지식과 경험, 높은 어학적 능력이 함께 요구된다. 그런 측면에서 로스쿨이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는 법학 제도다."

- 로스쿨이 배출하는 '새로운 변호사' 사례가 궁금하다.

"지난해 법무법인(로펌)에서 로스쿨생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가 왔다. 해외 레이더 수입 계약 법률 자문을 맡은 로펌인데, 전자·기계 분야 전문용어를 이해하면서 국제 계약을 검토할 수 있는 변호사를 필요로 했다. 국내 유명 공대 출신으로 해외 경험이 풍부한 로스쿨생을 추천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사시에선 볼 수 없는 유형의 변호사가 로스쿨에서 나올 수 있다."

- 로펌뿐 아니라 기업들 수요도 있겠다.

"로스쿨 취업설명회엔 로펌만 참여하지 않는다. 삼성, 이랜드 같은 기업들도 온다. 로펌도 그렇지만 기업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변호사에 대한 니즈(수요)가 크다. 그런 대상을 로스쿨에서 찾고 있다. 법학지식이 크게 요구되는 분야는 연수원 출신을 뽑고, 법학지식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른 분야 능력을 가진 인력은 로스쿨에서 채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사시는 서울대·고려대 법대가 강세였는데 이번 시험에선 많이 떨어졌다.

"사시 합격자 수로 학교 서열이 결정되던 시대는 지났다. 얼마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질 좋은 변호사를 배출하느냐에 따라 각 로스쿨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변호사시험 합격률도 중요 잣대다. 올해 2회째인데 몇해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서열이 바뀌지 않겠나. 높은 합격률을 보인 로스쿨과 그렇지 못한 곳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다."

- 변호사예비시험을 도입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예비시험 도입의 논리는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은 서민에게도 법조인 진출의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로스쿨은 이미 특별입학전형을 운영 중이다. 당초 선택지로 제시된 예비시험과 특별전형 가운데 후자를 택한 것이다. 입학정원 2000명 중 120명이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 약자에 대한 특별전형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예비시험까지 도입하는 건 무리다.

예비시험을 도입한다 해서 개천에서 용이 더 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강남,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의 변호사시험 도전 우회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선례를 봐도 예비시험 합격률은 아주 낮다. 시험 도입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로스쿨 특별전형 학생들을 지원하면 더 확실하게 '개천의 용'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 고비용 구조 로스쿨 대신 사시 존치가 낫다는 의견도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하는데, 과연 사시가 그런지 볼 필요가 있다. 시험을 통해 벼락출세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미화하기 위해 나온 말일 뿐이다. 사시에 합격한 극소수 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인생의 실패자로 전락했지 않는가. 예측가능성이 극히 불투명한 시험에 대한 이런 '환상'은 비현실적인데도 여전히 국민을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또 법조인을 '용 난다'고 표현하는 건 과거에나 통용되던 말이다. 다원화·개방화 된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 용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로스쿨 졸업 후 7급 공무원이 될 수도 있는데 그게 무슨 용이냐. 로스쿨을 졸업해도 다시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 로스쿨 취업난, 변호사 과잉이란 얘기가 계속 나와서 그런 것 같다.

"로스쿨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시기다. 로스쿨과 연수원 출신이 동시 배출되는 과도기라 '일시적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변호사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사회 전체가 불황 터널을 벗어나면 이런 문제는 점차 해소될 것이다.

꼭 국내 취업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우리 변호사들이 국제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많다. 일례로 국제기구 종사자 상당수가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한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적어도 5000명 정도는 국제기구에서 활약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 어학 능력을 갖춘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진출 가능성은 매우 높다."

- 로스쿨 제도 안착을 위한 당부의 말 한 마디.

"로스쿨 도입 5년차다. 이제 겨우 두 차례 졸업생을 배출했다.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 안정적 운영을 해야 하는 걸음마 단계다. 부정적 측면을 부각해 성급한 비판을 쏟아내면 로스쿨이 제대로 안착하기 힘들다. 진득하게 바라보고 응원해 줬으면 한다. 로스쿨이 진정한 법조인 양성 교육기관으로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건 따뜻한 격려와 관심, 지원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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