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길…지재권 20여건 확보
5억원 부도·뇌경색 딛고 재기…수처리 기자재 수십종 개발
전국서 부품수리 요청 줄이어…한달에 1만㎞ 이상 주행…"세계일류제품 만들어야죠"
최덕호 덕성산업기계 사장(58)은 새 차를 사도 4년 이상 타지 못한다. 한 달에 1만㎞ 이상 주행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바쁜 것은 찾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는 수처리기자재 업계에서 '해결사'로 통한다. 수처리 설비에 생긴 어떤 문제에도 해답을 찾아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가 이런 기술력을 갖추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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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최덕호 사장은 그 해를 잊지 못한다. 악몽이 찾아온 해이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세에 상경해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기계를 다루던 그는 29세가 되던 1984년 문래동에서 창업했다. 국화아파트 부근이다.
10평짜리 월세공장을 얻었고 국산 중고 선반과 밀링을 1대씩 샀다. 직원 1명과 중장비 부품과 수처리 기자재를 만들었다. 자신은 주로 선반을 다루고 직원은 밀링을 만졌다. 최 사장은 쇠를 깎고 표면을 다듬는 것은 물론 용접에도 자신이 있었다. 최 사장은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고향의 아버지가 올라와 격려해줬다. 그의 부친은 “기계 하나만 잘 다루면 평생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며 10년 된 중고 선반으로 사업을 시작한 아들을 격려해줬다.
조금씩 성장하던 그에게 1993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중견기업에서 주문받아 제품을 납품했는데 그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무려 5억원이나 물렸다. 당시 한 해 매출에 버금가는 금액이었다. 졸지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 돈을 받아야 금융사 빚도 갚고 협력업체의 자재값과 음식점 외상값도 줄 수 있었다. 친인척에게 빌린 돈도 있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해 자금 여유가 없었다. 당시 서울 강서구 연립주택 지하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집에 살고 있었다. 방 2칸짜리 집에는 가족 4명과 더부살이로 와 있는 사람 등 8명이 북적거리며 살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글세 탈출의 꿈도 사라졌다. 그뒤 허리띠를 더 졸라매며 한푼씩 빚을 갚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에는 뇌경색이 찾아와 반신이 마비됐다. “한번은 순천과 안동에서 일을 마친 뒤 태백을 지나오는데 왼손이 말을 듣지 않더군요. 그래서 피곤해서 그런가 생각하고 차를 세워놓고 잠시 쉬었는데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그는 이대로 쓰러질 순 없었다. 한방과 양방 협진을 받으며 병원에서 손잡이를 잡고 재활치료를 받았다. 마비된 왼쪽 몸을 움직이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새벽마다 부인과 함께 뒷산을 올랐다. 주변에서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의 정상을 회복했다. 부도를 맞은 뒤 12년째인 2005년 친척의 빚마저 다 갚고 장부책에 빨간 줄을 그은 뒤 덮었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3월 중순. 인천 금곡동에서 조촐한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대지 2000㎡, 건평 1000㎡의 작은 공장이다.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공장 준공을 축하해줬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줘 고맙다”며 화분을 들고 찾아온 옛 채권자도 있었다. 20㎏짜리 쌀포대를 차에 싣고 온 하객도 있었다. 창업한 지 29년 만에 최 사장이 처음 마련한 자가 공장이다. 그동안 그는 문래동을 거쳐 인천 등지의 월세공장을 전전했다.
이 공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한쪽 벽에 특허증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침전지 슬러지배출장치’를 비롯해 ‘자동으로 텐션(팽팽한 정도)을 조절할 수 있는 슬러지 수집기’ 등에 관한 특허다. 최 사장은 “그동안 획득한 지식재산권이 20여건”이라고 밝혔다.
공장 안에는 그동안 공사한 사진 수십장이 붙어 있다. 슬러지 수집기, 빗물 펌프장 경사컨베이어, 필터프레스 등이다. 이들 공사 역시 입소문으로 듣고 찾아와 설치해준 것들이다.
최 사장은 “수십년 동안 수처리기자재나 부품을 가공하다 보니 이 분야의 기자재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그가 순천 안동 태백 춘천 등지의 수력발전소를 다니는 것도 그곳의 수력발전소나 국가시설에 설치할 기자재 및 부품을 제작 설치해달라는 요청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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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고장을 수리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에게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다 보니 현장에 가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기계 전기 자동화 분야에도 나름대로 감각을 갖고 있다.
그가 제품화한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겨울이 되면 정수장의 물이 언다. 그러면 각종 밸브 등의 작동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그 많은 물을 기름으로 데울 수도 없다. 그는 기계적으로 물에 진동이 생기게 해서 얼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를 만들었다. 바닷물이 잘 얼지 않는 것은 염분 덕분이기도 하지만 파도가 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물의 표면에 생기는 기포를 걷어내는 장치도 개발했다. 고인 물의 표면에 생기는 기포는 먼지를 응집시켜 산소를 차단하고 물을 썩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밖에 버터플라이 밸브의 디스크 처짐 방지장치, 정수장의 약품 투입량 측정기도 개발해 특허나 실용신안 등 지식재산권 등록을 마쳤다. 그가 수처리기자재를 개발해 설치한 곳은 전국의 주요 수력발전소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환경사업소 등이다. 아울러 벨트컨베이어 기어박스 슬러지수집기 등의 설치와 유지보수 업무도 하고 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거래처와 신용을 지키는 일”이라며 “그게 품질이든 납기든 금전적인 문제든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래야 수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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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절반 이상은 모르는 곳에서 연락이 오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지인이 소개한 것이다. 최 사장은 “그동안 수십종의 기자재를 개발해 전국 주요 발전소나 환경사업소 등에 설치했고 유지 보수해왔다”며 “이제는 공장도 지어 틀을 갖춘 만큼 주력 제품을 육성해 한 가지 품목만큼은 세계 일류제품을 만들어볼 작정”이라고 다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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