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돌담

입력 2013-05-12 17:47   수정 2013-05-13 01:53

돌담 바람을 막지않고 돌 사이로 지나가게
제주 돌담에서 불황경영 노하우 배워

정창선 < 중흥건설 회장 kyj4668@naver.com >



잠자리에 들기 전 우연한 기회에 읽었던 책 속의 한 구절 ‘재능의 또 다른 말은 관심이다. 지독한, 열정을 쏟는 관심’이 떠올랐다.

40여년 전 건축일을 처음 접하던 시절, 생에 처음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쏟았던 것 같다. 골조가 무엇인지, 철근 벽돌 모래 등 건설현장은 궁금한 것 투성이였다. 서른이 다됐던 나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건설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 이후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30여년이 지난 지금, 변함없이 한 분야만 바라보는 이유는 나의 건설업에 대한 관심이 곧 재능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오로지 한 분야만 바라보며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철칙을 지켜오고 있다. 이것저것 문어발식 사업 확장보다는 내실 경영을 통해 안정 속의 성장을 이룩하려 노력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바람이 가져온 부동산 침체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몇 해 전 제주도를 찾은 적이 있다. 제주도의 전통가옥에서 머물렀던 일행은 유난히도 강한 바람에 무슨 일이라도 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했지만 집주인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걱정 말라고 했다. 다행히 그의 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민들은 이미 바람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진 사람들이 아닌가.

불어오는 바람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선조 때부터 행해오던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 삶을 지켜 나갔던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도 가옥은 바람에 강하게 설계됐다. 지붕의 경사는 모두 낮게 하고 ‘올래’(거리에서 대문으로 통하는 좁은 길)와 ‘이문간’(대문이 달린 집)을 설치해 이 집 안으로 바람이 직접 들이치는 것을 막는다.

뿐만 아니다. 제주의 돌담은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매년 불어오는 태풍을 이겨낸다. 낮게 쌓인 돌담을 보고 있자면 이래서 어떻게 강한 바람을 막겠다는 것인지 언뜻 의구심이 들지만 오랜 세월 돌담은 거센 바람을 막고 제주도민들의 가옥을 지켜왔다. 그 돌담은 바람을 그대로 막아내지 않는다. 현무암의 구멍과 돌담 사이사이 난 구멍으로 바람을 그대로 지나치게 한다.

요즘 들어 많이 이야기하는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시련을 잘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내실경영이 필요하다.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는 것처럼 각자의 집안을 지키는 노하우와 철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실경영’은 ‘견고한 돌담을 쌓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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