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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이사장은 1980년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서 당시 무역협회장이던 고인과 함께 수출 강국의 청사진을 그렸다. 강 전 장관은 1970년대 중반 경제관료 시절 당시 남덕우 부총리를 도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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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인생의 대선배로 모시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아직 기억합니다. 모든 여건이 부족했던 개발연대에 경제 발전 기틀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고인의 남다른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과 대화를 하되, 꼭 해야 하는 일은 뜻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제부총리가 돼야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고인을 귀감으로 꼽을 것입니다.
한국은 수출로 일어선 나라입니다. 급성장한 교역의 밑바탕엔 고인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고인이 무역협회장을 맡던 시절, 서울 강남구에 무역센터를 건립하자며 각계를 설득하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저는 그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88년 세워진 무역센터는 수출 강국 한국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귀중한 상징물이 됐습니다.
고인이 떠나신 지금, 우리는 아직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수출 여건이 어렵고 성장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정부는 기업들이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기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 가야 합니다.
고인은 늘 미래를 준비하신 분이었습니다. 1980년대 정보기술(IT)의 진보를 예견하며 컴퓨터를 누구보다 빨리 익히셨습니다. 국내 관료들 중 워드프로세서를 능숙하게 활용하신 첫 번째 인물일 겁니다. 새로운 것을 늘 익히려고 노력하셨고, 후학 양성에도 적극적이셨습니다.
최근까지도 선진화포럼을 통해 특유의 아이디어와 혜안을 펼쳐 놓으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언제나 진취적이며 열정적이었던 그 삶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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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고인은 ‘정부는 기업이 잘되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계셨고 우리 경제가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고인이 후배 관료들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인은 누구보다 치우침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특정 지역을 위한다거나,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부총리 자격으로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할 때 여러 장관들의 의견이 잘 맞지 않아도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차분히 설득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960년대 장기영 전 부총리가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던 데 비해 고인은 전혀 그런 면모를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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