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형 금융·상업·문화 키워야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작년과 올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 같은 공동체를 서울시에 심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1세기 1000만 인구의 대도시에서 이런 시정(市政)이 펼쳐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작년 9월 서울시는 2017년까지 마을 활동가 3180명을 육성하고 975개 마을 공동체를 선정해 운영, 재정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 2월에는 22개 분야에 총 222억원을 지원한다는 ‘2013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이 발표됐다. 부모커뮤니티 사업, 다문화마을 공동체, 상가마을 공동체, 텃밭 가꾸기, 북카페, 마을예술창작소, 청소년 휴카페 같은 사업들이다. 박 시장은 이 마을공동체가 ‘한국형 복지국가의 핵심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 당국자는 “지난 몇 십년간 경쟁의 가속화, 개발 위주로 인해 피폐해진 시민의 삶을 치유하고, 이웃과 함께 잘사는 방법을 찾는 공동체 회복사업”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시가 대도시 시민들의 삶을 치유하겠다고 직접 관여하는 게 옳은가. 사람들은 도시생활이 필요하거나 좋아서, 또는 시골이 싫어 스스로 도시 거주를 선택하고 그 비용을 치른다. 도시생활을 ‘피폐한 것’으로 규정해 지자체가 시민의 삶의 형태를 조성하고 돌봐주겠다는 생각은 가부장적 국가 관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시장은 동네 주민들끼리 벽을 허물고 대화를 트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생활은 서로 바빠서 타인의 활동에 간여하지 않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개인적 삶’이 본질이다. 서로 삶의 경계를 침범하고 남의 집 숟가락 몇 개인가 헤아리려 하는 것은 과거 ‘동네’에서 하던 일이다. 현대 도시인 대부분은 이런 사생활 노출을 싫어한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따라서 ‘마을 생활’이 지선(至善)이란 생각은 상당한 반론의 여지를 남긴다. 이는 무엇보다 자율적인 시민생활이 주축이 되는 현대 도시를 부정하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시가 도시를 복고적 마을행태로 바꾸려고 그 지도자를 시민의 세금으로 3000명이나 육성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뉴욕, 런던,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작년 7월 박 시장은 ‘협동조합도시 서울’ 비전을 선포하고, 향후 10년간 8000개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서울지역 총생산의 5%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민 1인이 1개 협동조합에 속하도록 만들어 ‘협동조합 천국’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 박 시장의 꿈이다.
박 시장의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주식회사체제에 대한 불만 때문일 것이다. 주식회사는 자본 지분(持分)에 비례해 의결권이 ‘1원 1표’로 정해지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를 행사하므로 비정한 ‘자본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1인 1표 의사결정은 정치적 의사결정이다. 따라서 경제적 효율성보다 조합원 간의 정치적 합의와 몫의 배분이 먼저 고려된다. 이런 협동조합 의결방식은 소규모 농업인-상인들이 결합하는 자기보호적 공동영업조직에서는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형화하고 이익이 커질수록 스스로 분열할 소지를 안게 되므로 그 규모나 생산성이 제한돼 대도시의 주종산업조직이 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지금 서울시에 박 시장이 원하는 만큼의 협동조합이 없는 것이다. 또한 특정집단에 시혜하는 정책이 항상 그러하듯이 경쟁력과 자생력이 결여된 협동조합을 양산하여 장래 서울시의 짐이 될 우려도 있다.
박 시장은 최근 이화여대 특강에 나가 “도시농업 종사자가 되거나 ‘파머스 마켓 코디네이터’ 같은 발상의 전환을 이루면 일자리의 보고를 만들 수 있다”는 강연을 했다. 서울은 ‘포린 폴리시’의 ‘2012년 글로벌 도시지수’ 평가에서 세계 8위를 차지한 초일류 글로벌 시티다. 따라서 이에 걸맞은 상업, 금융, 문화, 미디어 등 선진국형 서비스 산업의 둥지가 되고 국내외 자본과 첨단기술을 쉴 새 없이 유치할 책임을 가진 도시다.
일류도시는 일류생산력을 창출하고 촌락 같은 도시는 촌락생산성을 창출하게 마련이다. 박 시장의 협동조합이나 마을 공동체가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정말 도시에 대한 그의 신조에서 나왔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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