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해법 좌담회] 대법 전원합의체 열어 정기상여금 포함여부 명확히 해야"

입력 2013-05-26 17:33   수정 2013-05-26 23:30

근로자 소송 계속될까
"묻지마 줄소송 없을 것"…"현장경영자 위기감 높아"

법령 개정 목소리 있는데
근로기준법 개정하면 좋지만 국회 합의 가능성 적어

새 법령에 담을 원칙은
통상임금서 제외수당 열거…네거티브 방식이 효율적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사회·사진)=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가장 시급한 것은 뭔가.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우선 사법부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법원이 지난 수십년간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오다가 지난해 금아리무진 사건을 계기로 다르게 판단을 내렸다. 지금도 하급심에서는 사례별로 판단이 바뀌고 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정기상여금에 대한 입장을 바꿨는지 명확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합의체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이 안 된다고 다시 입장을 바꾸면 그걸로 해결되는 거다. 만약 포함된다는 입장을 확인한다면 굳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형준 경총 노동정책본부장=노사가 그동안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인정했던 부분을 법원이 깬 것이다. 가장 금액이 큰 정기상여금을 건드리면서 노사 갈등이 야기됐다. 이런 부분을 다시 검토해 기존 노사 합의를 존중하는 쪽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대법원에서 문제를 야기했으니 결자해지 차원에서 사법부가 나서야 한다.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대법원은 20년 전부터 일관된 논리로 통상임금을 판단해왔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이를 법과 제도에 반영하지 않고 직무 유기한 것이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입장을 명확히 해주면 상황 정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건 더 큰 문제니까 입장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는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 그때까지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만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 혼란이 정리된다.

▷사회=과거 3년치 소급분 문제와 미래 문제를 구분해서 봐야 할 것 같은데.

▷이 원장=과거분은 노·사·정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소송을 내는 노동자들은 미지급된 임금을 받는 걸 자기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그쳐 현장 근로자를 한 방향으로 유인할 수도 없다. 설령 자기 조합원이라고 하더라도 “나 회사 그만두고 지금까지 받을 수 있는 거 받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막겠는가. 3년치 소급분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근로자 개개인의 의사가 중요하다.

▷이 본부장=개별 근로자의 권리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노사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노조가 사용자와 마주앉아 노사협상을 해왔다. 이런 점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노조가 과거 3년치 소급분에 대해서도 소송을 내지 않도록 근로자를 이끄는 등 전향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노조는 사용자와 노사협상을 맺어온 주체인 만큼 신의칙을 지켜야 한다.

▷하갑래 단국대 교수=법령에 소급적용 규정을 넣는 건 어려울 것이다. 입법 기술상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일단 법령을 바꾸면 법원이 앞으로 낼 판결에서 과거 3년치 소급분에 대해서도 이를 참고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법에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범위가 없었기 때문에 법원이 참고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 법령 개정을 통해 이 부분이 명확해지면 사법부가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규정에 없던 게 생기면 그 명확성을 법관이 존중하지 않겠는가.

▷박 교수=소급효과가 모두 금지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이론에 따르면 근로자에게 이익이 될 때만 소급효과가 인정됐는데 지금은 그 반대다. 근로자는 소급효과를 인정하면 자신의 권리를 빼앗긴다고 느끼기 때문에 하 교수 말대로 과거 3년치 소급분을 법령 개정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별적인 소송을 통해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설령 소급효과 규정을 만든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들어올 것이다. 근로자들이 소송전에 참여하기보다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노조가 이끌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소송으로 돌려받는 3년치 임금을 ‘사회연대기금’으로 만들어 비정규직 등의 복지 확대에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사회=미래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령 개정이 필수적이다.

▷박 교수=최선의 해법은 근로기준법 개정이다. 통상임금이 뭔지 직접 정의하든지, 최소한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문제는 여야 간 합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이 보다 현실적이다. 통상임금을 명확하게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뭐가 포함되고 배제되는지 구분해야 한다. 시행령 개정에도 장애물이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문제 제기가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여야 합의가 안 되면 근본적으로 진전이 막히는 법률 개정보다는 수월할 것으로 본다.

▷하 교수=3~4년 전이면 시행령으로 해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례가 나온 만큼 시행령 개정만으로 수습하기에는 늦었다. 법원 판례를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바꾸려고 하면 입법부가 저항할 여지도 크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회 논의 과정이라는 정공법으로 가는 게 뒤탈이 없다. 설사 시행령으로 간다고 해도 입법예고 등 필요한 절차를 거치려면 6개월은 걸린다. 법을 바꾸는 것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고 할 수 없다.

▷이 원장=법령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는 찬성한다. 다만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할 가능성은 낮다. 합의 가능성을 높이려면 여야 할 것 없이 대법원 판례를 수용해야 한다. 그 다음 갈등이나 비용을 최소화하고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른 해석의 여지를 없애는 문제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복잡한 임금체계 전반을 검토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를 수용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떼기 어렵다.

▷사회=법령을 바꾼다면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하나.

▷하 교수=현재 법령은 어떤 내용을 통상임금에 넣는 지 규정하는 ‘포함임금 열거(포지티브) 방식’에 가깝다. 통상임금이 뭔지 정의를 내려놓고 이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근로자가 받는 임금은 기본적으로 모두 통상임금’이라고 정의해 놓고 어떤 걸 배제할지 열거하는 ‘배제임금 열거(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 포지티브 방식은 ‘새로 생긴 수당 항목은 어떻게 할지’와 같은 해석상의 문제가 생길 여지가 더 크다. 네거티브 방식은 문제 소지가 작다.

▷박 교수=네거티브 방식에 동의한다.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은 ‘근로자가 받는 임금은 기본적으로 모두 통상임금’이라고 해놓고 세 가지를 여기서 배제한다. 먼저 실비 변상적 급여와 임시로 지급되는 임금이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같다. 문제는 일본이 지급 주기 1개월 초과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은 분기나 연 단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생긴 것인 만큼 이 부분을 빨리 논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이 본부장=통상임금 제도가 우리와 가장 유사한 나라가 일본과 미국이다. 두 나라 모두 네거티브 방식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해석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이 줄어든다. 네거티브 방식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본처럼 지급 주기가 1개월을 넘는 임금은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는 게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 이를 네거티브 리스트에 넣어야 한다.

통상임금 문제가 한국 사회의 이슈로 자리잡았지만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제안한 노·사·정 대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이 6월 국회에서 명확한 해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국경제신문은 노사단체 관계자와 노동법 전문가들을 초청해 해법을 모색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갑래 단국대 법학과 교수,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지난 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였다. 통상임금 문제가 불거진 이후 전문가들의 공개 좌담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들은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구체적인 해법에서는 의견이 나뉘기도 했다.

소급분 해결은 법령개정으로 어려워…노사정 만나 대화로 푸는 게 바람직

▷사회=시행령만 바꾼다면 대법원이 이를 존중해 판단을 바꿀 가능성이 있나.

▷박 교수=대법원의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법률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통상임금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시행령을 무시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판결문을 보면 통상임금 정의를 시행령에서 따오고 있다. ‘정기적’ ‘일률적’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시행령을 참고했다는 방증이다. 시행령을 바꾸면 법원도 참고할 것으로 본다.

▷하 교수=근로자가 받을 임금을 제한하는 문제인 만큼 시행령에만 규정하는 건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시행령이 “유급휴일은 1주일 동안 개근한 자에게 준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이를 합헌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차선책으로 시행령 개정을 검토해 본다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사회=산업현장의 노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이 원장=지금 나오는 얘기를 보면 현장 조직들이 발빠르게 줄소송을 내는 것 같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 소송 거는 사람들을 보면 해고되거나 그만두면서 회사와 감정이 안 좋아진 사람들이다.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잘 가면 소송을 낼 생각을 쉽게 할 수 없다. 소송을 내면 사용자와 전쟁하자는 얘긴데, 근로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송사는 집안 망하는 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소송 걸린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 정치권과 여론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거기에 휘둘리는 것 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 본부장=퇴직자가 소송한다고 이 원장이 말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금 올라오는 소송들은 전부 재직자가 낸 소송이다. 현장 경영자들의 위기감이 상당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은 더 불안해진다.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기업은 의사결정을 하면서 상당한 리스크를 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노사관계가 똑같이 벼랑 끝에 서 있다. 지금 당장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게 현장의 모습이다. 당장 흑자 회사가 적자 회사로 바뀌고, 그것으로 인해 생산시스템이 안 돌아갈 수 있다.

▷사회=노동계는 노·사·정 대화 불참을 선언했는데 문제를 정리하려면 일단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원장=고용노동부가 노총에 직접 연락한 적은 없다. 언론에만 얘기하고 있다. 대화를 하자는 진정성이 있는 자세인지 의심스럽다. 정식으로 연락이 오면 그때 가서 판단하겠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참여할 여지가 없다. 수차례 이런 입장을 밝혔다.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권리는 개별 노동자가 보유한 것이지 노조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 본부장=임금 교섭이라는 틀을 지켜야 한다. 노·사·정 대화에 응하는 것이 노동계의 책무다. 개별 근로자의 권리라는 논리라면 임금 결정 때 개별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자 해야 한다.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대한 주장은 평소에 노동계가 더 강하게 한다.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면 안 된다.

▷이 원장=노·사·정 위원회가 노동계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논의하다가 노사 합의가 안 되면 나중에 공익위원 안으로 가고 그러면 노동계는 결국 들러리 서게 되는 거다. 덤터기는 노동계가 뒤집어쓴다. 지금도 이런 우려가 있다.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쉽게 테이블에 앉기 어렵다.

▷하 교수=노동계에서 큰일이 터졌는데 전국단위 노조가 대화를 안 하겠다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설령 지금 대법원 판례가 그대로 적용돼도 앞으로 임금 상승률이 장기간 동결되는 등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 사업장에서 주로 소송을 내 근로자 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사측도 조급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사측도 기본적으로 통상임금에 들어가지 않는 각종 수당을 신설해온 등의 책임이 있다. 노·사·정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회=윤기설 노동전문기자 겸 한경 좋은일터연구소장
정리=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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