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임영록 KB지주 사장이 5일 내정됐다. KB지주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회장추천위원회는 이날 임 사장을 비롯해 민병덕 국민은행장,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 4명의 회장 후보군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마친 뒤 위원들의 최종 투표를 거쳐 임 사장을 선출했다. 위원 9명이 모두 임 내정자에 찬성했다는 게 KB지주의 공식 입장이나, 이는 미리 이견을 조정한 뒤 투표를 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임 회장 내정자는 경력만 보면 전형적인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이다. 행시 20회로 재정경제원과 재정경제부에서 자금시장과장, 금융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공무원들은 그를 ‘오뚝이’ 같은 인물로 평가한다. 주요 보직 인사에서 몇번이나 밀려났지만 흔들림 없이 맡은 일을 해내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만년국장’ 비주류 설움
임 내정자는 관료 시절 정부부처 국장만 네자리를 거쳤다. 재정경제부 정책조정심의관을 시작으로 △재경부 경제협력국장 △외교부 다자통상국장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냈다. 보통 국장직을 두어자리 정도 거친 뒤 1급으로 승진하는 관례에 비춰보면 많이 옮겨다닌 셈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특히 외교부로 적을 옮겼을 때는 경제관료로 거의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말이 ‘파견’이었지 재정경제부에 사표를 내고 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외교부에서 오히려 뛰어난 성과를 내서 2005년 2월 재경부 내 핵심보직인 금융정책국장으로 ‘금의환향’했다.
관운이 그다지 따르지 않았던 배경에는 내로라하는 관료들이 그의 앞뒤 기수로 포진해 있었던 점도 작용했다. 변양호 보고펀드 공동대표의 경우 임 내정자와 경기고 69회 동기동창이지만 행시 기수는 한 해 앞선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임 내정자보다 오히려 행시 기수로는 3기수나 아래지만 금융정책국장 자리는 현안 해결에 뛰어난 수완을 보인 ‘대책반장’ 김 전 위원장에게 먼저 내줘야 했다.
1급으로 승진한 뒤에도 평탄치 않았다. 2007년 권오규 부총리가 조원동 당시 경제정책국장(현 청와대 경제수석)을 차관보로 승진시키면서 임영록 차관보를 정책홍보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임명된지 5개월도 안돼 이뤄진 인사였던데다 관례로 보면 차관보가 갈 자리는 아니었다. 재경부 안팎에선 권 부총리가 조 차관보를 워낙 신임하는 과정에서 임 내정자가 피해를 본 것이라고 여겼다.
임 내정자의 이같은 험난한(?) 경력을 놓고 일각에선 서울대 상대, 법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있는 관료사회에서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출신이라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친 모피아 조직에서 임 내정자가 입지를 다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떤 보직을 맡더라도 최선을 다해 성과를 냈고 본인의 역량도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갈등 조정능력 뛰어나
임 내정자의 강점으로는 부드러운 대인관계와 꼼꼼한 업무스타일이 꼽히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좀처럼 실수가 없다는 평이다. 이같은 성향으로 조직 내 갈등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례로 그가 외교부 다자통상국장이었던 시절 당시 불과 45세의 나이에 장관급 자리를 맡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외교부 특유의 텃세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장들보다 어린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임 내정자는 당시 노골적으로 항명을 하던 한 과장을 불러 한달만 김 본부장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도 ‘도저히 이 사람은 아니다’ 싶으면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한달 뒤 해당 과장은 임 내정자를 찾아와 “김 본부장이 따를 만한 분이더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임 내정자는 외교부에서 일하며 경수로 사업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부처 간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성과를 낸 것을 높이 평가받아 정부 훈장(홍조근정)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갈등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번에 회장추천위원회 멤버인 사외이사들도 임 내정자의 이런 성품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어윤대 현 회장과 달리 주요 경영현안들을 부드럽게 통제하면서 밀고나갈 수 있는 역량을 평가했다는 것. 한 사외이사는 “우리금융 인수 검토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와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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