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자금 경영과 가혹한 상속세

입력 2013-06-06 17:25   수정 2013-06-07 05:01

"평균 50% 넘는 기업 상속세 부담
경영권 이양 위한 편법 동원케 해 세율 낮추고,
감면혜택 확대해야"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 객원논설위원



어느 재벌 그룹의 자금관리 이야기가 요란하다. 수법이나 규모 등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건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자녀에 대한 경영권의 상속이 목적 또는 구실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우리는 개탄하고 분노한다. 정부의 대응책은 상속세를 강화하고 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상속세를 피하려는 수법이 더 고도화, 세계화됐다. 악순환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큰 기업 그룹을 일구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이 정말 자식에게 좀 더 남겨주기 위해 일감몰아주기나 비자금 마련, 상속세 회피 등에 명운을 걸었을까. 이미 대단한 부자가 돼 있는 자식들의 경제적 안위 때문에 기업가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파렴치한으로 매도될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경영권에 있다. 후계자에게 안정적인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욕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상속세는 이런 경영권의 이양을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앞에서 언급한 종류의 파행이 나타나는 이유다.

만일 상속세를 통한 경영권 이양의 방해가 정부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공익적인 관점에서 경영권의 가계상속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정부가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있지도 않았고 또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오너 경영이 정부가 나서서 막아야 할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영권이 흔들리게 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이는 국부 유출이나 고용불안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 중견기업이라면 경영권 상속의 어려움으로 인해 회사의 존립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만일 정부가 개입할 의지가 없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상속세 과세체계가 경영권의 상속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상속세 세율구조나 경영권 상속에 대한 규정들을 볼 때 경영권 이양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우선 한국의 상속세율은 주요 선진국들 중에서 사실상 가장 높은 50%를 최고 한계세율로 한 누진구조로 돼 있다.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상속금액이 30억원 이상이니까 수백억, 수천억 원에 달하는 회사를 상속할 경우 말이 좋아서 한계세율이지 50%는 거의 평균세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거기다가 지배주주의 주식에 대해서는 평가액이 최대 30%까지 할증되는 규정을 갖고 있다. 할증규정까지 적용되면 사전준비 없이 상속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상속인에게 남는 지분은 피상속인이 갖고 있던 지분의 절반보다도 더 줄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상속받을 자녀들을 회사의 임직원으로 채용해 고액의 보수를 지급하는 방법이다. 소득세율이 상속세율보다 상당히 낮아서다. 더구나 보수는 회사의 비용이기 때문에 그 부담은 일반 주주에게까지 전가된다. 2000년대 전반에 도입된 포괄주의로 말미암아 편법증여나 편법상속의 길이 막혔기 때문에 사전준비는 더 중요해졌다. 그러니까 자녀에게 계열사를 운영하게 하고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서 자녀들 재산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비자금을 조성해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굴리는 것 등의 행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방향은 분명하다. 상속세를 완화하는 것이다. 우선 세율을 대폭 낮출 것을 제안한다. 어차피 상속세로 들어오는 세수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이 세금이 세수나 소득분배개선에 괄목할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세목의 존립이유는 명분에서나 찾을 수 있다.

상속세율은 소득세율보다 상당히 낮아도 좋다. 상속대상이 되는 재산은 원칙적으로 소득세나 법인세를 이미 부담한 것이라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경영권에 대한 할증도 폐지하거나 크게 완화하는 게 옳다. 가업상속에 대한 감면혜택을 독일 수준에 가깝게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곽태원 < 서강대 명예교수 객원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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