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 "발가락 앗아간 히말라야, 왜 다시 오르냐고요?…14좌 완등 약속했거든요"

입력 2013-06-20 15:35  

블랙야크 김미곤 대장과 함께 가는'명산 40' - 경기 가평군 명지산



“14좌 완등을 하겠다고 이미 약속했거든요. 그래서 또 떠납니다.”

히말라야 가셔브룸1봉(8068m) 등반을 앞두고 있는 김미곤 대장(41)과 지난 15일 경기 가평군에 위치한 명지산을 올랐다. 국내 명산 40좌를 등반하는 블랙야크 ‘명산40’ 이벤트에 함께 참여한 것이다. ‘큰 사고’를 몇 차례 경험했으면서도 왜 다시 히말라야로 향하느냐고 묻자 김 대장은 “약속을 지켜야죠”라고 짧게 답했다.

명지산은 해발 1267m,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초보 등산객에겐 그리 쉽지 않은 산이다. 익근리매표소에서 승천사와 명지폭포를 지나 정상에 이르는 6.2㎞ 코스가 연중 개방돼 있다. 오르는 데만 4시간가량이 걸리는 코스라고. 이날 김 대장은 “다리가 불편하다”며 등산 스틱을 가져왔다. 오는 24일 블랙야크의 후원을 받아 히말라야로 떠나는 그는 “회사에서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익근리매표소에서 시작해 승천사 일주문을 통과했다.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서자 등산객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블랙야크에서 지급한 등산복을 입고 가방에 행사 깃발을 단 ‘명산40’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인사말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몇 좌 하셨어요”였다. 왼쪽 발을 절룩이는 김 대장의 옆에서 걸음을 맞춰 천천히 올랐다. “왜 왼쪽 발을 절룩이냐”는 질문에 김 대장은 “그러고 보니 늘 왼쪽 발이 문제가 된다”며 웃었다. 이미 두 번이나 히말라야에서 왼쪽 발을 다쳤다는 김 대장. 첫 번째는 낭가파르바트 루팔벽(8125m)을 오르던 2005년이었다. 낙석에 왼쪽 발등을 맞아 뼈가 부러진 것이다. 김 대장은 “당시 동료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며 “동료들의 만류로 살아났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언제냐고 묻자 김 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등산로 옆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김 대장은 “2010년 마나슬루(8163m)를 등반했을 때의 일”이라고 말을 꺼냈다. 당시 마나슬루의 기상 상태는 최악이었다. 정상을 앞둔 7400m 지점에서 눈보라가 거세 모든 것이 흰색으로 보이는 ‘화이트 아웃’ 상태가 된 것이다. 원정대의 선두에 있었던 김 대장은 하산을 명령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통에 결국 그는 눈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몇 차례의 죽을 고비 이후 캠프로 복귀한 그에게 “윤치원, 박행수 대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왼쪽 발이 동상으로 부어오른 상황에서 그는 “내려가지 않고 수색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구조헬기까지 동원했지만 수색은 실패했고 그는 발가락 3개를 잘라내야 했다. 이듬해 김 대장은 다시 마나슬루를 찾아 박행수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고 정상에 두 대원의 사진을 묻고 하산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명지폭포를 향해 산을 올랐다.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익근리매표소에서 명지폭포까지 2.6㎞는 그리 힘들지 않은 코스다. 명지폭포에는 3~4명의 등산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폭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등산로 아래쪽 나무계단으로 내려갔다. 폭포라는 이름 치곤 높지 않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소박한 느낌을 줬다.

발걸음을 다시 옮기려는데 가파른 등산코스가 나타났다. 명지폭포에서 정상까지 향하는 3.6㎞는 험하기로 유명하다. 산행을 계속하다가는 김 대장의 상처가 심해질 것 같아서 그만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미안해하는 김 대장에게 “등산가가 굳이 정상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농담을 건넸다.

김 대장은 사실 대표적인 ‘등로주의’ 등산가로 꼽힌다. 등로주의는 정상을 밟는 것만을 목표로 휘몰아치듯 산을 정복하는 ‘등정주의’와는 달리 산과 교감하고 자신만의 등산로를 개척하는 것을 우선하는 등산 방식이다. 김 대장은 “등로주의 등산가도 정상을 밟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맞다”며 “어떻게 방식을 선택하느냐가 다른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명지산=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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