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임금은 항상 완벽해야 했기에…

입력 2013-06-20 17:00   수정 2013-06-21 00:17

사실여부 관계없이 칭송 일색…토론문화 안착 못한 이유일수도


이모비야(爾母婢也). ‘네 어미는 종년이야’란 뜻의 이 네 글자는 사마천이 쓴 ‘사기’의 ‘노중련전’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이 이름뿐인 천자를 ‘질차(叱嗟·질타와 같은 말)’하며 했다는 이 말은 영조 이후 금기어가 됐다. 영조의 생모가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이와 관련, 적지 않은 정치적 사건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하나가 채제공의 ‘번암집(樊巖集)’에 수록된 노중련전 일화다.

영조대왕께서 80여 세쯤 되시자 소일거리가 없어 홍문관의 한림과 주서를 시켜서 옛 책을 소리 내 읽게 했다. 어느 날, 승지에 이어 겸춘추가 읽기 시작했는데 다음 부분이 바로 ‘노중련전’이었다. 왕은 침상에 누워 손을 이마에 얹으셨는데, 코 고는 소리가 달아 보였다. 그런데 겸춘추가 문제의 네 글자를 읽자,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나 화내며 말씀하셨다.

“어떻게 내 앞에서 그것을 읽는단 말인가. 읽은 놈이 누구냐.” 신하들은 모두 두려워 떨었다. 지금의 임금(정조)께서 세손으로 곁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얼른 대답했다. “신이 내내 여기에 있었습니다만, 그 네 자 읽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정녕코 내가 들었는데, 신료들이 듣지 못할 이치가 있겠는가.” 신하들은 세손의 대답을 따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상의 안색이 조금 풀려서 다시 침상에 누우셨으며, 신하들도 물러 나왔다. 효심이 지극했던 왕으로서 30년을 하루같이 가슴에 맺혔으니 아무리 꿈속이란들 그 네 자를 듣자마자 곧바로 일어나게 된 것이며, 불같은 역정으로 저 미물을 박살내 버리려고 했다. 만약 세손의 기지에 찬 임기응변이 없었더라면 재앙이 어디에까지 이를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후세 사람들에게 성조(聖祖)의 효심과 신손(神孫)의 인애가 그 이치는 하나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를 기록한다.

영조는 자기 생모의 출신이 거론되는 것을 금지했고 그런 말을 발설하는 자를 엄하게 처벌했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었지만, 방향을 트는 순간 노기가 되며, 결국 형벌로 귀결됐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일화다.

그런데 내용을 좀 더 뜯어보면, 정조는 조부이자 임금인 영조를 속인 것이요, 영조는 자신의 효심 때문에 무고한 생명을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채제공은 해석을 전혀 달리한다. 정조의 임기응변적 기망을 군주의 덕목인 인애로, 영조의 비뚤어진 행위를 자식의 지극한 효심으로 해석하며 둘의 완벽한 조화를 칭송한다.

채제공의 이런 사고는 왕은 언제나 완전한 존재라는, 혹은 존재여야 한다는 동양적 성군론의 한 단면이다. 덕치를 외치며 왕도를 이상으로 여겨왔던 우리의 문화가, 토론과 합의를 불편해하고 절대와 전제로 쉽게 흐르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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