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이혼하면 빚도 나눠 갚아야"

입력 2013-06-20 17:05   수정 2013-06-21 04:55

빚이 재산보다 많아도
대법 "재산분할 다툴수 있어"



남편 뒷바라지와 생활비 마련 등을 위해 부인이 빚을 지게 됐다면 남편도 이를 분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혼 당시 부부의 빚이 재산보다 많은 경우 재산(소극적 재산인 빚) 분할이 불가능하다는 종전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20일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빚을 지게 된 만큼 재산 2억원을 분할해달라”며 오모씨(39·여)가 허모씨(43)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오씨는 2001년 사회활동가인 남편 허씨를 만나 결혼했다. 오씨는 정당활동을 하던 남편이 가계에 도움을 주지 못하자 개인과외 등을 하며 뒷바라지했다. 남편의 선거자금과 활동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2억7600만원을 빌렸고 보험사로부터 3000만원가량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남편 허씨는 오히려 오씨의 학교 후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에도 자신의 외도가 오씨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이에 오씨는 허씨 잘못으로 인해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됐다며 위자료를 청구하고 채무 역시 허씨 때문에 떠안게 된 만큼 재산분할로 2억원을 지급해달라며 맞소송을 냈다. 양측이 변론을 마친 시점을 기준으로 오씨와 허씨의 채무는 2억3000만원에 달해 총 재산 1억9000만원보다 많았다.

1·2심은 허씨 잘못을 인정해 “아내 오씨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도 재산분할 청구에 대해서는 “부부의 재산보다 채무액이 많아 남는 금액이 없는 경우에는 분할 대상이 아니다”며 오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재산분할이 결국 채무분담을 정하는 것이 되더라도 법원은 그 채무의 성질 등 일체의 사정을 참작해 해당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채무분담을 명할 때 일반적인 경우처럼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도 등을 바탕으로 일률적인 분할 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은 1997년 부부 한쪽이 공동재산 형성 과정에서 빚을 져 두 사람의 전체 재산보다 채무가 많아졌을 경우 상대방의 재산분할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확정 판결은 부부의 양성평등과 실질적인 공평을 지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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