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수첩

입력 2013-06-23 17:33   수정 2013-06-24 00:58

휴대폰에 밀려난 오래된 전화번호 수첩
그 아련한 이름들에 미안함과 씁쓸함이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 kyj4668@naver.com



회사를 세운 지 얼마 안 돼 아주 바쁘게 일하던 무렵, 거래 은행에서 일간 계획과 주간 계획을 적을 수 있는 수첩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공책 크기만한 그 수첩은 월별로 나뉘어 있는 일간표가 있어 그 안에 회사 일정을 적기도 하고, 개인 일정을 적기도 하며 잘 활용했다. 지금도 그 버릇에 항상 3주, 3개월, 3년간의 자금 계획을 세워 경영계획을 세운다.

일정표가 없는 수첩의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지인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적기 시작한 지인들의 연락처가 몇 년이 지난 후 수백개에 달했다. 때문에 오래도록 그 수첩을 간직했는데 최근 몇 년간은 그 수첩을 잊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주 걸게 되는 전화는 휴대폰에 저장해 손가락만 누르면 되니 수첩을 일일이 들춰보는 일이 별로 없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책장 한쪽에 잊고 지냈던 수첩 몇권을 발견하곤 오랜만에 수첩 안을 들춰보며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했다. 10여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놈 이름을 발견하곤 전화번호를 눌러 보았다. 그런 전화번호는 이제 연결이 안 되는, 즉 존재하지 않는 전화번호가 돼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수첩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이름만 대면 번호가 술술 나오던 당시 지인들의 얼굴도 가물가물해진 옛 기억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적혀 있는 이름들을 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문간방할머니라고 적힌 이름을 보며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젊은 나이 때 세 들어 살던 주인집 할머니의 번호였다. 저녁값을 아끼고자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때 따듯한 아랫목 이불 밑에서 보리밥 한 공기를 꺼내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와 보니 그분의 생사조차 모르고 지내 왔다.

나는 그간에 무엇을 얻었기에 이 많던 사람들의 존재 하나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살았던 것일까.

소중한 지인들에 대한 기억이 그저 수첩과 휴대폰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몇 가지 글자와 숫자의 나열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미안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휴대폰도 수첩도 아닌 세상을 살아가며 가슴에 새겨진 전화번호 하나쯤은 꼭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창선 < 중흥건설 회장 kyj4668@naver.c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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