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반도체 1·2위, 최대 구매자 애플 '포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손을 맞잡았다. 두 회사는 3일 서로의 반도체 특허를 공유키로 하는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지난 30년간 죽기살기식 ‘치킨게임’을 벌여온 메모리 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많다.
메모리 업계는 지난해 업계 4위였던 일본 엘피다가 몰락한 뒤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제 사활을 건 경쟁이 아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을 균점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나누는 메모리 반도체의 팍스 코리아나 시대가 열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메모리 1, 2위가 손을 잡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특허공유 계약을 맺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공유 범위는 양사가 가진 반도체 특허 전체다. 삼성전자는 10만2995건, 하이닉스는 2만1422건의 국내외 특허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0년 미국 마이크론, SK하이닉스는 2007년 일본 도시바와 각각 특허공유 계약을 맺고 있다.
미국 램버스 등 해외 경쟁사 및 특허괴물들과의 숱한 소송에 시달려온 두 회사는 전략적 특허 공유가 서로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2010년부터 협상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으로 두 회사 간 반도체 특허분쟁 가능성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무차별적인 특허소송을 일삼아온 특허괴물들과의 다툼 소지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SK하이닉스는 “특허분쟁 가능성을 해소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고, 삼성전자는 “이번 계약이 국내 IT업체 간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선례가 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D램 반도체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도 좀 더 쉬워졌다. 메모리 업계는 2015년 이후 미세공정 수준이 10나노대에 이르면 STT-M램, Re램, P램 등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메모리 선두업체가 삼성전자를 매개로 모두 특허를 공유하게 됨에 따라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이 가장 큰 피해자?
작년까지 메모리 시장은 치킨게임의 연속이었다. 1995년 450억달러 규모였던 시장은 2011년 390억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하지만 첨단 IT(정보통신)산업의 특성상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내려면 경쟁사를 퇴출시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했다.
이 때문에 모든 업체들이 치킨게임에 뛰어들었고 1995년 20여개사였던 D램 업체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 등 4개사 체제로 재편됐다.
과거 치킨게임을 주도한 게 삼성전자다. 1993년부터 업계 1위였던 삼성전자는 경쟁사가 쫓아오면 값을 크게 낮춰 경쟁사를 적자에 빠트렸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제 2위 하이닉스, 3위 마이크론과 모두 특허를 공유하게 됐다. 앞으로는 동종업계와 함께 가겠다는 얘기다
메모리 업계가 힘을 합치면 구매자들이 좀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한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가장 큰 구매자는 1위가 삼성전자(239억달러)이고 2위가 애플(214억달러)이다. 메모리 업계가 단결할 수록 애플은 많은 돈을 낼 수밖에 없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주경쟁자가 그동안은 다른 반도체 회사였으나 이제는 애플이 됐다”며 “이번 하이닉스와의 특허공유는 애플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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