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4대 곡물회사 주도로 1100억원에 인, 식량자주권 확보에 빨간불,'한국판 카길'계획 수포로 돌아가나
이 기사는 07월12일(05:1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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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식매매계약(SPA)까지 체결해놓고 미국 선두권 곡물유통회사 EGT의 지분 20% 인수에 실패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글로벌 식량위기에 대비하기위해 해외 메이저 곡물회사 지분을 인수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던 aT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STX팬오션이 보유한 EGT지분 20%을 세계 4대 곡물유통회사인 번기(Bunge)사와 일본 종합상사인 이토추(Itochu)가 1100억원에 인수했다. 번기사와 이토추가 전격적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에 aT가 인수하기로 했던 EGT지분 20%를 가로챈 것이다. aT는 이미 지난 4월 STX팬오션과 EGT지분 20%를 인수하기로 하고 SPA계약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번기사와 이토추의 우선매수권 행사 가능성을 간과해 이번 인수전에 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중인 STX팬오션은 그룹 유동성 위기때문에 올해 초부터 이 지분을 프라이빗 딜(비공개 매각)방식으로 매물로 내놓았다. 국내 주요 밀가루 수입처인 CJ그룹도 국내 최대 식품업체인 CJ제일제당과의 시너지를 위해 EGT지분 인수를 추진했지만 협상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식량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글로벌 곡물유통회사에 대한 지분을 가지면 국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밀, 콩, 옥수수 등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지분 인수 경쟁이 치열했다”며 “당분간 EGT와 같은 글로벌곡물회사의 지분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GT는 STX팬오션이 지난 2009년 번기와 이토추와 2억 달러를 출자해 공동 설립한 미국내 선두권 곡물유통회사다. 지분율은 당초 번기가 51%, 이토추가 29%, STX팬오션이 20%였다. 하지만 이번 인수로 번기사의 지분율은 64%, 이토추는 36%로 올라갔다.
EGT는 지난해 미국 북서부 지역에 최신식 곡물 터미널을 세운 바 있으며 미국 전역에 곡물 저장 설비와 부두, 하역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 밀, 콩, 옥수수 등의 곡물 연간 처리 규모는 우리나라 한 해 곡물 수입량의 절반에 가까운 800만톤이다. 그동안 STX팬오션은 EGT의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어서 이중 160만톤 처리를 도맡아 상당한 규모의 식량자주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이번 인수전에 실패하고 STX팬오션도 글로벌 곡물회사의 지분을 전량 매각함에 따라 세계 곡물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곡물 시장을 지배한 카길·아처대니얼스미드랜드(ADM), 루이드뤼파(LCD), 번기 등 4대 곡물회사의 횡포에 맞서 유사시 독자적으로 곡물을 쉽게 조달하기위해 aT가 이번에 지분 인수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에 들여오는 곡물의 70%이상을 세계 4대 곡물 메이저나 마루베니·미쓰비시 등 일본 종합상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글로벌 곡물회사들은 한국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가격 상승기나 불안정기에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불러 이익을 챙기고 있다. EGT지분 보유로 그동안 아시아 지역 곡물 운송 1위 업체로 곡물 메이저들과 30년 이상 신뢰 관계를 구축해온 STX팬오션의 입지도 흔들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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