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범죄 사전 예측
장기미제사건 정밀분석 등 자료수집·수사기법 개발
수사자료·통계 DB화
과거사건자료 통합관리 안돼…언론보도 의존해 온 현실 개선
국과수 한계점 보완
혈흔·DNA 등 감정에만 치중…민간연구소와 교류확대 필요
#1. 미국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기지. 이곳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연구소가 있다. 워싱턴 FBI본부, FBI훈련원과 함께 3대 핵심시설로 꼽히는 이 연구소는 흉포화·지능화하는 범죄를 효율적으로 막고, 관련 자료를 모아 미래에 발생 가능한 범죄와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건 현장자료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기능이 핵심으로 과학수사와 범죄 예방의 요람으로 평가받는다. 연간 5조원이 넘는 FBI 예산의 상당 부분을 이곳에서 쓴다. 범죄 연구와 예방의 중요성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덕택이다. 6층짜리 3개동이 연결된 초대형 연구소엔 600여명이 근무한다.
#2. 경기 광명시와 맞닿아 있는 서울 독산1동 289의1.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 둘러싸인 대로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 산하 ‘독산실험실’이 있다. 살인 등 강력사건 용의자의 유전자(DNA)를 분석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연구실의 입지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규모도 FBI 연구소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중 실제 실험실 공간은 지상 2~4층(1520.6㎡)뿐이다.
지능화·흉포화한 강력사건들이 늘어나면서 과학수사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은 경찰이 풀어야 할 오랜 숙제였다.
‘과학수사의 본산’으로 꼽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연구 기능은 실종되고 현장 증거물 검증 작업에 허덕이고 있다. 부검의가 모자라 인근 대학병원 의사에게 SOS를 보내고, 만성적 인력난으로 법의학과 의사 정원 23명을 설립 57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채웠다. 국과수가 ‘감정연구소’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의 숙원이던 수사전문 연구기관 ‘범죄연구센터(가칭)’가 충남 아산에 들어서게 된 이유다. 범죄연구센터는 서울 휘경동의 경찰수사연수원(원장 황운하 경무관)이 아산으로 이전하는 9월에 맞춰 설립된다.
○중요사건자료 통합관리 안 돼
전국 일선서 강력팀 수사관들은 최대 고민거리로 수사자료 관리의 부재를 꼽고 있다. 오래된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관련 자료가 필요한데 개별 사건자료의 사후관리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A경찰서 소속 B경사는 최근 현장 증거물을 잃어버렸다가 진땀을 흘렸다. 서랍 속에 대충 넣어뒀던 용의자의 지문 자료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서랍 안에 함께 있던 다른 서류에 딸려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문 자료를 간신히 찾아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B경사는 “경찰서에 증거물보관실이 있지만 예전 습관대로 대충 관리했다가 큰일날 뻔 했다”고 말했다.
서울청 장기미제사건전담팀 관계자는 “장기미제사건은 오래된 사건들이다 보니 증거 역시 오래된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증거가 훼손되기도 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인데 미제 사건이 될 때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일선서를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는 어려움을 덜고 센터에서 증거물 등 자료를 한꺼번에 보게 되고 연구기능이 강화된다면 미제사건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과수, 사건 현장 반영 못해
국과수는 그동안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수사기법 연구나 실험 업무에 손을 대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일선 과학수사팀에서 7년 가까이 근무한 C경위는 “국과수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 업무에 급급해 사건 현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새로운 수사기법 연구를 시도하지 못하고 디지털포렌식 등 이미 10여년 전에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수사기법과 관련해서도 최근에야 담당 인력을 2명 확보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11월 전국 16개 지방경찰청 산하에 신설된 장기미제사건전담팀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강원 화천 할머니 살인사건 등 13건을 해결하는 데 그쳤다. 지난 2월 기준 전담팀 소속 경찰 총원은 50명으로 팀별 인원은 2~3명 수준이다. 공식 정원을 확보하지 못해 각 지방청 내 다른 팀이나 일선 경찰서에서 인원을 차출해 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기미제사건전담팀 차출도 꺼리고 있다. 최근 한 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전담팀에 차출된 D경위는 “1000페이지가 넘는 관련 서류를 읽는 데만 몇 날 밤을 꼬박 새웠다”며 “결국 기존 서류에 기대 기억을 더듬어서 재수사하는 것이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범죄연구센터 미래범죄도 예측
전문가들은 국내 범죄연구센터가 문을 열면 국내 과학수사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범죄연구센터는 FBI연구소, 캐나다 연방경찰(RCMP)의 법과학평가센터, 일본 경찰청의 과학연구소 등을 벤치마킹했다.
연수원은 국내 1호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인 권일용 경찰수사연수원 교수를 비롯해 경찰수사연수원 창립 멤버인 박상선 교수를 주축으로 센터 설립에 필요한 범죄수사자료 수집·분석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범죄연구센터는 △유형별 사건 △범행도구·수법 및 심리분석 △장기미제사건 용의자 분석 등 자료를 수집·분석한다. 중요 사건의 경우 112신고 당시 녹취파일까지 DB로 만들어 분류한다. 신종범죄 수사기법을 개발하고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미래범죄’ 유형도 예측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연구하려 해도 자료가 없어 언론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수사 관련 자료·통계를 학계와 공유한다면 범죄 예방 및 수사기법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박현호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하다못해 주거침입 사건이 발생하면 건물 벽을 어떻게 뚫었는지, 맨손으로 뚫었는지, 도구를 사용했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세분화해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선주/김태호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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