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외환위기 때 여신관행 권하는 금감원

입력 2013-07-21 17:43   수정 2013-07-21 21:47

정창민 금융부 기자 cmjang@hankyung.com


장창민 기자
금융부
cmjang@hankyung.com



금융감독원은 최근 9개 은행의 여신담당 부장들을 소집해 거액 대출이나 STX 쌍용건설 등 구조조정 기업들에 대한 여신심사위원회에 은행장을 다시 참여시키자고 했다. 은행장 책임을 강화하고 신속한 대출 심사를 위한 것이란 이유를 댔다.

은행 관계자들 반응은 심드렁했다. 외환위기 당시 금감원 주도로 여신심사위원회에서 은행장을 제외시켰는데, 과거 방식으로 되돌리겠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연은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은행장들은 여신 심사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대부분 전결권을 갖고 있어 사실상 모든 대출 과정을 통제했다.

부작용은 컸다. 정치권과 정부 고위 인사들의 온갖 청탁과 민원이 은행장에게 몰리면서 부실 대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은행장이 외압을 견디지 못한 채 손쉽게 돈을 내주면서 몇몇 은행들은 결국 쓰러졌다.

금감원은 거액 대출과 관련한 청탁이나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에 대한 여신 지원 압력을 차단하기 위해 1997년 여신 관행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은행별로 여신 심사 협의체를 만들도록 했다. 은행장은 여신 심사 과정에서 배제시켰다. 그 이듬해부터 은행들은 여신 및 리스크 담당 실무자들로만 여신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해오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장의 책임 확대와 빠른 기업 구조조정 지원 등을 이유로 들며 다시 15년 전으로 은행 여신 관행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실적과 부실채권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이미 지고 있다. 오히려 은행장이 여신 심사에 직접 관여하게 되면 여신 협의체는 유명무실해질 공산이 크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은행장 결정에 대해 임원들이 반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 지원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감원으로선 다시 은행장에게 ‘짐’을 지우게 한 뒤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관치(官治)’의 유혹을 느낄 법도 하다.

그렇다고 여신관행을 15년 전으로 되돌려서야 되겠는가. 그보다는 채권은행 간 이견을 조율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정창민 금융부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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