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모래시계 거꾸로 돌리지 못하고…'드라마의 거장' 김종학 PD 자살 '충격'

입력 2013-07-23 17:53   수정 2013-07-24 02:13

분당 고시텔서 숨진채 발견

수사반장·여명의 눈동자…시청률 65% '모래시계' 연출…"한국 드라마 격상시킨 인물"



한국 방송계에 한 획을 그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한 거장 김종학 PD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62세.

분당경찰서에 따르면 고인은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고시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발견 당시 유서로 보이는 문서와 번개탄이 있는 것으로 미뤄 자살로 추정하고 수사 중이다. 그는 지난 5월 SBS 드라마 ‘신의’ 출연료 6억원을 미지급하면서 배임,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피소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두 차례 조사를 받았다.

고인은 최근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는 등 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가족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따로 나와 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MBC에 PD로 입사한 고인은 1981년 ‘수사반장’으로 연출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다산 정약용’(1983), ‘동토의 왕국’(1984), ‘인간의 문’(1984), ‘영웅시대’(1985), ‘남한산성’(1986),‘인간시장’(1988) 등을 연출했다. 그는 1992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로 스타 PD 반열에 올랐다. 송지나 작가와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70%를 넘기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95년 MBC를 떠나 제작사 제이콤을 차린 그해 SBS 드라마 ‘모래시계’로 또 한번 신드롬을 일으켰다. 송 작가와 다시 한번 뭉친 ‘모래시계’는 ‘귀가시계’로 불릴 만큼 전 국민적 인기를 끌면서 최고 시청률 64.7%를 기록했다.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인물을 연기한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 등은 국민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고인은 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네 차례나 받았고, 한국방송대상 연출상과 작품상, PD연합회대상 작품상 등도 받았다. SBS 김영섭 PD는 “선 굵은 연출로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2007년 판타지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내놓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550억원이 넘는 제작비 때문에 200억원 규모의 빚을 졌다. 재기작으로 내놓은 SBS드라마 ‘신의’는 이민호와 김희선 등 톱스타를 앞세웠지만 시청률은 10%대 초반에 그쳤다. 이 때문에 기업 협찬비가 당초 계획보다 줄면서 출연료를 미지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제작사가 비용조달계획을 완결 짓지 않은 채 드라마를 만드는 업계의 구조적인 병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식을 접한 송 작가는 “그분에게 드라마를 배웠기 때문에 사석에서는 지금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며 “내게는 너무 각별한 분이 떠나셔서 말할 수 없이 슬프다”고 말했다.

김종학프로덕션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은 “고인은 본인 뜻과 달리 와전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많이 힘들어했다”며 “그래도 견뎌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소는 성남시 분당 차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8시.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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