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8시30분 출근길,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일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취임한 이건호 신임 국민은행장이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1층 건물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노조원들은 이 행장 등장에 맞춰 구호를 높였다. “이건호는 자진사퇴하라.” “관치금융 물러가라.” 이 행장은 출근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 장면은 하루 전에도 똑같이 반복됐다. 지난 22일에는 취임식을 갖기 위해 본점 입장을 시도하던 이 행장이 노조로부터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을 뻔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주주총회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취임한 이 행장이 사흘째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금융계에선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별 일 있겠느냐’며 느긋해 하는 시각이 의외로 많다.
노조가 최고경영자(CEO)의 취임을 반대해 실력으로 저지하는 장면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먹을 불끈 쥔 노조 앞에서 피해자인양 묵묵히 서 있다 돌아가는 CEO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에 대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평가절하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른바 ‘데자뷔’의 느낌이 진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민은행에서는 비슷한 일이 불과 한 달여 전에도 일어났다. 당시는 임영록 KB금융지주 신임 회장이 대상이었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 회장 선임은 ‘관치금융의 산물’이라며 퇴진을 요구했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국민은행 직원들은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서울 강남권의 한 지점장은 “대안 없이 농성하는 노조나 기싸움을 벌이는 경영진을 보면 열패감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 적법하게 임명된 만큼 노조가 과도한 발목잡기를 푸는 게 우선일 것”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경영진 측의 합리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국민은행 측이 노조에 진심을 담아 의지를 밝히고 노조가 농성을 접을 수 있는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루빨리 조직을 정비해 노사가 은행의 미래를 두고 격론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노사가 잘못된 관행을 답습한다면 회장과 행장의 임기가 끝나는 3년 뒤 또 같은 장면이 데자뷔처럼 등장할 수밖에 없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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