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들은 억울하게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58년에 태어난 이들은 상급학교 진학 무렵이면 번번이 바뀌는 교육제도로 혼란을 겪었다. 서울·부산지역에서 시작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의 첫 대상자가 돼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거지 인근 학교로 강제 배정됐다. 주요 사립대학에서는 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1977년부터 과(科)별 모집 대신 ‘계열별’로 신입생 선발 방식을 바꿨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고등학교와 대학의 선배들은 58년 개띠를 푸대접하기 일쑤였다.
'로또'가 된 선택형 수능
세월이 흘러 지금 고교 3학년인 ‘95년 돼지띠’도 잦은 교육제도 변경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선택형’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이다. 교육부는 수험생 입시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올해부터 쉬운 A형과 예전 수준의 B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응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기대와 달리 선택형 수능은 대학입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난 6월 모의수능 영어 A형에서는 몇 문제만 더 맞히면 표준점수와 등급이 확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수능 아랍어 과목이 이랬다. 아랍어는 전체 평균점수가 낮아 조금만 공부해도 높은 표준점수가 나왔다. 때문에 한때 전국 고교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한 곳도 없었는데 4만여명이 선택해 제2외국어영역에서 선택률이 가장 높았다. 요행으로 점수를 높이는 ‘로또 수능’이 올해는 영어 과목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수도권 대학과 지방 주요 대학들이 인문계는 국어와 영어, 자연계는 수학과 영어를 B형으로 각각 지정했다. 중위권 대학들은 A·B형 응시를 모두 허용하되 B형에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선택형 수능제도 내에서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중위권 수험생들은 이제 11월 본수능에서 A형 선택이 유리할지, B형을 선택할지를 놓고 눈치 싸움을 벌이게 됐다. A형은 운 좋게 몇 문제 더 맞히면 표준점수가 확 뛰고, 실력대로 평가받는 B형은 그나마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서다.
대선공약에 발목 잡혀서야
문제는 중위권 수험생의 선택이 전체 입시 판도를 뒤흔든다는 점이다. A형으로 얼마나 이동하느냐에 따라 B형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수험생 숫자가 달라진다. 소수의 최상위 수험생을 제외한 대부분 상위권 수험생들은 자신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동료들이 얼마나 A형으로 갈아타느냐에 따라 자신의 표준점수와 등급이 정해질 운명이다. 점수가 자신의 실력보다는 남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선택형 수능의 문제점을 인식해 다음달까지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수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대입 전형 3년 예고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대입 전형의 안정성을 위해 주요 사항 변동은 3년 전에 예고토록 한다’는 공약을 지키자니 현재 고 1·2 학생들까지도 선택형 수능을 봐야 할 처지다. 대입 합격이 자기의 실력보다는 동료의 선택에 의해서, 운(運)에 의해서 뒤바뀐다면 제대로 된 교육제도일 리 없다. 대입 원서를 낼 때뿐만 아니라 수능 원서를 낼 때도 눈치작전을 펴야 한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대학과 수험생 모두를 낭패스럽게 하는 선택형 수능은 올해 한 해로 충분하다. 3년 예고제가 수험생들의 혼란을 줄여주자는 취지라면 선택형 수능 폐지 문제에 굳이 적용할 이유도 없다. 섣불리 바꾼 입시제도로 천덕꾸러기를 만드는 건 95년 돼지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정태웅 지식사회부 차장 re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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