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래부를 위한 변명

입력 2013-07-25 16:59   수정 2013-07-25 21:16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출범 100일을 맞이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시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창조경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정책의 실효성 구체성도 결여됐다는 평가다. 그래서 해결책이 뭐냐고 물으면 또 늘 나오는 건 ‘컨트롤 타워 기능 부여’ ‘정책조정 권한 강화’ ‘부총리 승격’ 등과 같은 해묵은 타령들이다. 결국 조직을 더 확대하고 권한을 많이 주면 된다는 논리다. 정부가 모든 걸 다해야 하는 시대면 또 모르겠지만 상투적이고 시대착오적 주문들이다. 어찌 보면 이런 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야말로 미래부를 망친 장본인들이다.

미래부의 오늘은 이미 정부 조직개편 때부터 예고됐던 바다. 정작 미래기획 기능보다 물리적으로 이것저것 끌어 모아만든 미래부다. 그러다 보니 우정사업본부 등 ‘미래’나 ‘창조’와는 별 상관도 없는 조직들까지 떠안게 됐다. 조직의 관성은 참 무섭다. 미래부가 개방형 직위를 관료들로 채우고, 민간전문가들을 내보낸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누굴 장·차관으로 앉혀도 관료들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미래부는 실패작

당초 미래부의 탄생 취지 자체는 나무랄데 없었다.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ICT)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돼야 할 목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미래부가 이 목표에 충실했다면 ‘미래부가 안 보인다’고 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과학기술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도 아닌데 뚝딱한다고 금방 성과가 나오면 그거야 말로 이상한 것 아닌가. ICT도 정부가 나서 새 시장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융합도 과학기술이나 ICT 자체보다 결국 이를 필요로 하는 쪽이 주도해야 효과가 나게 돼 있다.

정작 문제는 미래부가 창조경제의 짐을 다 짊어진양 압박하는 분위기에 부담감을 느낀 미래부의 조급증에 있었다. 미래부가 창업과 일자리 창출을 밀어붙이다 보니 과학기술은 무슨 속도전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ICT도 관주도형 사업들을 쏟아내면서 기업들이 슬슬 피하는 양상이다. 융합도 미래부가 컨트롤 타워 운운하는 바람에 관련 부처의 경계감만 사고, 시장은 시장대로 정부가 융합을 하느냐는 표정이 역력하다. 미래부의 창조경제 실현계획이 과거의 재탕·삼탕 소리나 듣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연구소 개혁' 'ICT 규제철폐'를

결국 미래부가 안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미래부에서 ‘미래’가 안 보이는 게 진짜 문제다. 지금이라도 미래부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창조경제라는 무거운 짐부터 빨리 내려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건 미래부, 아니 정부가 결코 주도할 수 없는 민간의 몫이다. 대신 미래부는 자기 일부터 챙겨라. 자신의 주기능인 과학기술과 ICT를 창조경제 버전으로 바꾸지 못하면 남들에게 아무리 창조경제를 설교해 봐야 헛일 아닌가.

5년은 길지 않다. 미래부가 더도 말고 딱 두 가지만 해 줬으면 좋겠다. 50년이 다 돼 가는 모방형의 낡은 정부연구소 체제를 확 뜯어고치는 게 그 하나다. 기업도 대학도 거들떠 보지 않는 정부연구소다. 이를 놔두고 기업에 대학에 창조경제를 요구할 수는 없다. 또 하나는 ICT 규제 철폐다. ICT 육성특별법보다 ICT 규제 철폐 특별법이 더 시급하다고 할 정도로 규제가 널린 게 국내 ICT 환경이다. 정치권의 눈치나 살피며 ‘동반’ ‘상생’을 떠들 때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각종 규제가 창조경제의 혁신동력에 치명적일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하는 게 바로 미래부다. 미래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이 두 가지만 확실히 해도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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