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기대작 두 편이 흥행에 참패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와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론 레인저’다. 양국을 대표하는 흥행 감독이 연출한 대작들이어서 충격은 더 크다. 김 감독은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등 세 편으로 2000만명의 관객을 모은 명장. 버빈스키 감독은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 네 편으로 40억달러의 티켓(관람료) 수입을 올린 일급 흥행사다.
총제작비 250억원 이상을 투입한 ‘미스터 고’는 국내에서 500만명 이상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추지만 관객 수가 160만명에 그쳤다. 총제작비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 이상을 투입한 ‘론 레인저’도 세계에서 1억6000만달러를 회수하는 데 그쳤다. 한국에서는 40만명을 모아 관람료 수입이 14억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유명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가 2015년 개봉할 예정인 ‘캐리비안의 해적5’의 제작 조건을 재협상해야 할 처지라는 외신보도까지 나왔다. 내년에 디즈니와 계약이 만료되면 다른 스튜디오로 거취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두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성 있는 액션 영화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주인공이 영화 속 상황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스터 고’는 중국 서커스단에서 야구 훈련을 받은 고릴라가 어린 매니저와 함께 한국 프로야구에 와서 활약하는 이야기. 그러나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설정에 ‘황당하다’는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많았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고릴라가 야구를 하는 것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근거와 체계적인 훈련상황을 보여줘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고릴라만 판타지 캐릭터이고, 나머지 캐릭터는 모두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릴라와 꼬마 여주인공 간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적었다. 이 때문에 고릴라가 팬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고릴라를 세밀하게 그린 부분은 뛰어났지만 그런 기술력이 관객에게 주는 감동은 5분 정도에 그친다는 얘기다. 인터넷에 올라온 관객들의 감상평을 종합하면 “CG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고 고릴라가 보여주는 액션도 괜찮았지만 스토리와 연출, 웃음 포인트가 약하고 감동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릴라 외에 톱스타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같은 날 개봉한 이병헌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레드’에 관객이 몰린 게 단적인 예다.
디즈니의 야심작 ‘론 레이저’는 인디언과 레인저가 힘을 합쳐 백인 금광탈취단을 응징하는 스토리. 얼굴에 하얀 색칠을 한 조니 뎁이 미스터리한 인디언으로 등장했다. 그는 어릴 때 백인 광산업자의 꾐에 속아 부족을 몰살시킨 죄책감에 복수를 기도한다.
조니 뎁 캐릭터는 버빈스키 감독의 판타지영화 ‘캐리비안 베이’의 잭 스패로우처럼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지만 이번에는 극 중에서 ‘나 홀로’ 동떨어진 느낌이다. 그가 인디언이란 설정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는 판타지 속 인물도, 현실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캐리비안 해적’에서는 문어선장과 인어 등 괴이한 캐릭터들과 함께 잭 스패로우란 캐릭터가 판타지 세상을 창조했다. 반면 ‘론 레인저’는 서부극이란 장르의 틀에 갇혀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지 못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버빈스키와 김 감독의 명성 때문에 제작자나 투자사들이 객관적으로 작품을 따져 보지 못했다”며 “두 영화는 기획의 패착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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