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제품군 축소로 비용절감…통신사 1곳만 거래 '보조금 출혈' 막기
'팬택의 얼굴' 박병엽 대표 없이…외부자금 유치가 '첫 시험대'
창업자 박병엽 부회장의 사퇴와 함께 800여명의 직원이 무급휴직 처리된다는 발표가 난 다음날인 25일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 항상 시끌벅적했던 평소와 달리 이날은 대부분의 직원들이 말없이 굳은 표정이어서 무거운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각 팀장들이 이날 오후부터 개별 면담을 통해 무급 휴직 대상자를 통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면담을 앞둔 한 직원은 “마치 살생부를 들춰보는 심정”이라며 불안해했다.
작년 3분기(7~9월)부터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해 결국 인원 구조조정에 나선 팬택의 운명은 박 부회장으로부터 지휘봉을 건네받은 이준우 사장(50·사진)의 어깨에 달렸다. 그는 지난 24일 밤 박 부회장의 사퇴와 동시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과 공동대표를 맡았던 ‘투톱 체제’에서 이 사장 ‘원톱 체제’로 재편된 것이다. 이 사장은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연구실장을 맡다가 2001년 팬택 연구소장으로 입사한 뒤 중앙연구소장, 기술전략본부장, 사업총괄 부사장 등을 거친 엔지니어 출신이다.
○흑자 전환 어떻게?
이 사장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팬택의 흑자 전환이다. 팬택이 전체 직원의 3분의 1 규모를 구조조정하고, 생산 라인업을 축소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겨루는 걸 포기했다는 의미다. 1700여명의 인원으로 국내 시장에서 일정 규모의 판매량만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성장보다는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적자를 면해야 한다.
이 사장은 지난 24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구성원께 드리는 글’에서 “라인업을 축소하고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 안정적 수량을 확보해 수익구조를 개선코자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구조조정인 무급 휴직을 단행한 것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흑자 전환은 비용 감축만으론 역부족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한편으론 스마트폰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 현재 월 15만대 수준인 판매량을 월 20만대까지는 끌어올려야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팬택의 계산이다. 이 사장은 이를 위해 내달부터 베가 브랜드에 대한 TV 광고 등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줄곧 취약점으로 꼽혔던 사후지원(AS) 서비스 센터 수도 확충하기로 했다.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출시했던 마케팅 전략은 그대로 유지하되, 특정 통신사 전용 스마트폰을 많이 내놓는다는 복안도 세웠다. 그간 스마트폰을 통신3사에 공급했다가 제품 판매가 시원치 않으면 과다한 보조금을 지급해야 했다. 일단 납품한 공급량 때문에 이득이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뒤에선 출혈이 심한 구조다. 특정 통신사 전용 스마트폰을 내놓으면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스마트폰 이외 신사업도 도전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모바일 기기와 연계해 수익창출이 가능한 사업 아이템을 꾸준히 발굴하고 팬택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부 자금 유치는 불투명
박 부회장이 꾸준히 추진해왔던 외부자금 유치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다. 박 부회장은 특유의 리더십과 친화력으로 부품사인 퀄컴, 경쟁사 삼성전자, 주주협의회(채권단) 등으로부터 올해만 총 2340억원을 유치했다. 하지만 신제품을 위한 연구개발(R&D)과 광고·보조금 등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모자라다. 그동안 자금 유치를 전담해온 박 부회장이 사퇴한 만큼 외부 자금조달의 동력은 떨어진 게 사실이다.
이 사장의 경영능력과 수완도 과제다. 엔지니어 출신인데다 공동 대표이사를 맡은 지도 6개월밖에 안 됐다는 점에서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많다. 채권단 관계자는 “‘팬택=박병엽’이란 이미지가 워낙 강해 박병엽 부회장이 없는 팬택이 위기를 극복하고 회생할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젠 ‘박병엽의 팬택’이 아닌 ‘이준우의 팬택’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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