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국민연금, 기업 의결권 확대는 바람직할까요

입력 2013-09-27 14:16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지분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400조원이 넘는 막대한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우리 주식시장에서 최대의 큰손 역할을 해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만 218개에 달할 정도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SK텔레콤, 포스코 등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이 거의 모두 망라돼 있다. 최근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소위 ‘10%룰’이 완화되면서 국민연금의 주식쇼핑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10%룰’은 국민연금이 특정회사 지분을 10% 넘게 보유할 경우 5일 내 공시해야 하는 규칙이다. 이를 지킬 경우 투자전략이 노출돼 국민연금은 투자회사 지분을 10% 미만으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이런 제한이 사라지면서 국민연금은 한솔CNS, 이수페타시스, (주)LS 등 기업 지분을 10% 넘어 취득했다. 국민연금의 주식쇼핑이 활기를 띠면서 과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도 맞물려 있다. 국민연금의 주요기업 지분 확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국민연금의 기업 지분 참여 확대를 찬성하는 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높아가고 있는 시기에 국민연금이 국민의 대리인 격으로 이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돈을 받아 투자하는 공적기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운용발전위원회는 “투자기업의 장기수익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의결권 행사 원칙과 지침 확립 등 일관성 있는 의결권 행사 기반을 조성해 의결권과 주주권을 원칙적으로 100% 행사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또 기업 경영진이 주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감독기관의 제재 또는 법원 판결이 있는 등 승소 가능성이 클 때 주주대표소송에도 적극 참가하거나 직접 제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의결권을 포함하는 주주권을 갖고 있다면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며 “국민연금이 이런 권리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돈을 운영하는 기금관리자로서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과거보다 강화돼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해도 여전히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다”며 “이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선진국의 공적 연기금도 이와 비슷한 주주권한 행사를 통해 문제 기업을 관리하거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며 재벌그룹의 영향력이 과다한 한국에서는 그 필요성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반대


반대 측은 국민연금의 목소리가 커지면 자본주의 원칙과 기업의 경영 효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며 지분 확대 내지는 의결권 행사 확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칫 정부의 의도가 기업 경영에 개입될 여지를 남긴다”고 말했다. 10%룰 완화로 국민연금이 주요 상장사의 대주주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데 자칫하다간 거의 모든 기업을 국민연금, 결국 정부가 지배할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재계 쪽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부가 주식을 가지고 민간기업에 대한 정책을 대리 집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는 연금사회주의로 매우 위험한 시도”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민연금은 2000만명 가입자의 노후자금을 강제로 위탁받은 대리인일 뿐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국민연금은 투자수익을 높여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2060년이면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금의 지속성을 높이는 데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괜히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월권행위라는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특정 기업에 투자했다가 경영성과가 나쁘거나 대주주가 횡령·배임 등에 연루돼 있다면 주식을 팔고 손을 떼면 그만이라고 지적한다.


생각하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서울 논현동 강남회관은 거의 매일 각종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특정 기업과 이런 저런 이해관계가 있는 이익단체나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이 국민연금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국민연금에 해당 기업 주식을 팔라든가, 특정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식으로 압력을 넣는다.

심지어 특정 기업을 인수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다. 국민연금으로선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이들의 요구가 일방적인 데다 때로는 사실도 아닌 풍문만을 갖고 국민연금에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웬만한 대형 상장사 주식을 대부분 갖고 있다 보니 이런 식의 집단 이기주의적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움직임이 점점 더 심해지는 이유는 바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단체 관계자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 국민연금은 이들의 목소리를 무작정 외면하기도 힘들다. 자칫하다간 국회에 불려나가 어떤 곤욕을 치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연금의 투자가 수익 극대화보다는 각종 정치세력이나 이해집단의 눈치를 보면서 여기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당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을 요구하라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는 바로 이 같은 함정도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주주권 행사에 무작정 찬성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런 데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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