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인센티브 모순…더 굶주리고 더 일하는 독재와 노예 상황 만들어
가격을 결정할 수 없기에 합리적 생산수단 결정 못해
자본주의 시장가격 차용…권력과 유착한 지하경제가 74년간 계획경제 유지시켜

1985년 3월12일. 전 세계의 눈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 쏠렸다. 재임 13개월 만에 사망한 콘스탄틴 체르넨코 후임으로 54세의 최연소 정치국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새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날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소련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경제체제로 자본주의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던 서구 학자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가속화한 미·소 군비경쟁은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으며 이로써 냉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군사력도 궁극적으로는 경제력에서 나온다고 볼 때 소련의 붕괴는 참담한 경제적 실패의 당연한 귀결이었다.당시 소련의 경제력은 미국과 맞먹는 것으로 오인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통계조차도 과장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1989년 소련인들은 1913년 차르 치하에서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증언이다.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면’ 누가 힘들고 싫은 일을 맡아 하겠는가. 이 인센티브 문제는 일반인도 인지했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내재된 오류였다.
사회주의자들의 대답은 공동선을 위해 계획당국의 명령에 복종하는 ‘신(新) 사회주의 인간’의 창조였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압제였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에서 경고했듯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독재와 노예로 가는 길이었다.

사회주의의 도래가 역사적 필연이라고 믿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미제스의 문제 제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원의 희소성과 합리적 배분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경제학자 중 사회주의에 경도된 학자들은 미제스에 맞섰다.
오스카르 랑게는 화폐와 소비재 시장을 허용하는 한편 각 소비재의 생산을 담당한 관리자들이 시장에서의 기업가들처럼 계획당국이 제시한 행정가격에서 특정 자본재에 대한 수요와 공급 의사를 드러내게 하고,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가격을 찾아내는 방법을 제안했다. 사회주의 관리자들의 이런 ‘시장 흉내내기’를,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필요를 예측하고자 하는 기업가들의 기능과 동일하다고 보는 랑게의 견해에 대해 미제스는 아이들의 전쟁놀이를 어른들의 전쟁과 혼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제스의 제자 하이에크도 논쟁에 뛰어들었다. 시장경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소비자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생산방법이 더 경제적인지 알 수 없으며 시장의 경쟁과정은 바로 이런 발견의 과정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지프 슘페터, 프랭크 나이트 등 유명 경제학자들이 랑게의 손을 들어주었고, 현실적으로 소련이라는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기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계산 논쟁에서 미제스가 패퇴했다고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제스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증명됐다. 영국의 경제학자 피터 와일즈는 1950년대 자유화 이전의 폴란드를 방문, 폴란드 사회주의의 계획을 입안할 때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거래되는 자본재 각각의 ‘세계 가격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알렸다. 소련의 사회주의 시도가 74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이 ‘세계 가격’의 이용에 있었다. 그러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까닭이었는지 와일즈의 증언은 무시됐으며 소련의 현실적 존재가 실은 미제스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이는 미제스의 패배를 선언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또 다른 비밀은 지하경제다. 소련에서 ‘톨카치’라 불린 불법 기업가들이 철강 등 필수 원자재들을 쌓아두고 있다가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할 처지인 공장책임자에게 접근해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았다. 부패의 먹이사슬로 권력층과 유착한 이들은 소련경제가 비효율적이나마 작동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소련에서 ‘부정직한’ 소득자의 처벌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시행됐는데, 부를 빼앗고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때가 많았다. 소련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정책이 특별히 위험한지 배울 소중한 반면교사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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