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계획 오류'에 빠진 정치

입력 2013-09-30 17:33   수정 2013-09-30 22:45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


기초연금 공약 후퇴를 두고 시끄럽다. 대통령은 거듭 사과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신을 지키기 위해 퇴진을 강행해 대통령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정 여건을 탓했지만, 기실 애초부터 실천하기 어려운 정책을 제시한 데 따른 잘못을 시인한 것과 다를 게 없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2011년 출간한 책(Thinking fast and slow)에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란 개념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으로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공약을 쏟아내고 각종 규제입법을 양산하는 이유도 정치인들이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세상이 움직일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지와 확신이 섣부른 규제 양산

낙관적 성향이야 뭐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복잡한 게 세상이다. 복잡한 현실에 발을 딛지 않으면 배는 산으로 가고, 전체 사회가 비생산적인 논란에 휩싸인다.

기초연금 등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고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등 ‘경제민주화’ 명분을 내걸고 국회를 통과한 대부분의 법들 역시 부작용을 생각하면 ‘계획 오류’의 결과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파행으로 치닫던 국회가 정상 운영에 들어갔다지만 기업들은 국회에서 어떤 ‘족쇄’를 양산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 같다.

법무부가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단시일 내 확 뜯어고치겠다는 취지로 고안된 상법 개정안이 초래한 에너지 낭비는 산술하기조차 어렵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세상에서 대통령이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아무리 경제활성화를 외쳐본들 무슨 반향을 일으키겠는가.

정치인과 관료들이 ‘계획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고집에 가까운 신념과 편견으로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한다. 대신 사회를 지탱해온 가치와 틀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낸 나라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빈부 격차 확대와 대기업 쏠림 현상이 그것이다. 단기간에 부(富)를 일구고 이를 후손에게 넘기면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다.

잡초 뽑으려다 농사 망칠 수도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런 부작용을 한꺼번에 해소하겠다고 달려들면 시장경제의 틀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단박에 세상을 맑고 투명하게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넘쳐나면 시장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법안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대통령 발언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잡초를 뽑으려다 곡식까지 뽑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지적이다. 기생하는 잡초는 밭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제거돼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모든 악(惡)을 예방하면 다수의 선(善)도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물에 대한 살육이 없으면 사자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취지가 좋은 정책도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환경부처럼 일단 ‘규제 강도가 센 법’을 만들어놓고 살살 다루겠다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선(善)’과 ‘정의’만을 외치기보다는 사회를 조금씩 발전시키겠다는 겸손한 자세로 법을 만들고 정책을 펴야 한다. 인간은 무지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계획 오류’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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