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작부터 삐걱대는 장애인 보험

입력 2013-10-07 17:10   수정 2013-10-08 02:44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


“생색내기식 보험이란 소리를 들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내년 초 선보일 장애인 연금보험에 대해 생명보험회사 고위임원이 내놓은 우려다.

사정은 이렇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장애인 연금보험 활성화를 위한 생보사 부서장 회의’를 소집했다. 장애인들이 일정 기간, 또는 평생토록 정해진 금액을 받을 수 있는 연금보험상품을 내놓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장애인이 직접 가입하거나 부모가 가입하고, 연금 수령인은 장애인 자녀로 하는 구조다.

하지만 상품 개발에 나선 보험사들은 “좋은 일을 하고도 욕먹게 생겼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정부가 실적 포장을 위해 밀어붙이는 바람에 제대로 상품을 다듬을 여유가 없이 출시할 수밖에 없어서다. 2001년 정부의 ‘지도’ 아래 장애인 전용 ‘곰두리보험’을 출시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암에 걸리거나 사망 시 보험금을 주는 곰두리보험은 장애인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한 해 판매 건수는 1000건 안팎에 불과하다. 별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내기 부담스러운 장애인이 많은데도 정부는 소득공제 100만원을 더 해주는 데 그쳤다. 보장내역도 부실해 오히려 일반 보험을 선호하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새로 설계 중인 연금보험은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창의적인 구조로 내놔야 한다고 주문한다. 선진국에선 사회공동체가 보험사와 함께 상품 개발과 판매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한다. 동사무소 등에서 상품을 판매해 보험설계사에게 빠지는 비용을 절감하고 보험료를 낮춘다. 지자체에서도 판매비용의 일부를 부담한다. 독일은 소득 수준을 감안해 정부가 일정액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매칭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은 질병 발생률과 사망률 등 장애인들의 위험률을 산정할 객관적인 데이터도 부족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일방적인 주문을 되풀이하고 있다. 전형적인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보험업계는 ‘일단 출시부터 하자’며 밀어붙이기보다는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가뜩이나 불편이 큰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더해서는 안된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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