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토론·표결은 뒷전…수틀리면 장외로

입력 2013-10-07 17:13   수정 2013-10-08 01:57

(2) 흔들리는 민주주의 가치 - '식물국회법'에 발목잡힌 한국 야당

협조없이 법안처리 불가능…국회선진화법이 민주주의 가치 훼손
정부조직법 통과에 52일이나 걸려…민주당 8월부터 54일간 장외 투쟁




보건복지부는 최근 ‘공약 후퇴’ 논란을 빚은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오는 22일까지 입법예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법안을 논의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법안 상정을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이 법안 처리를 계속 반대하면 내년 7월부터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최대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 반대땐 표결도 못해

과거에는 집권 여당 의석 수가 과반이면 야당 반대가 있더라도 정부 법안을 처리할 수 있었다. 야당이 상임위에서 법안 통과를 막아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법안을 본회의에 곧바로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면 법안이 가결되는 만큼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강행 처리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야당은 물리력을 동원한 저지에 나서면서 ‘의회 폭력’ 사태가 빈발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라도 법안 단독 처리가 힘들어졌다. 18대 국회 막바지인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도입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식물국회법’이란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법안에 대한 표결 자체를 막는다는 점에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흔드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 위헌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국회의장이 본회의 직권상정을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직권상정 가능 요건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 등이다. 국회의장이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직권상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야 의원 간 몸싸움 등 폭력사태를 막자는 취지에서다.

대신 ‘안건 신속처리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여야가 이견이 있어 상임위에서 처리가 안 되는 법안에 대해 해당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 또는 전체 국회의원 5분의 3 이상이 요구하면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곧바로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안건 신속처리제를 발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석 점유율이 60%를 넘는 당이 없기 때문이다. 복지위에서 기초연금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려면 복지위원 21명 중 13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복지위는 새누리당 11명, 민주당 8명, 무소속 1명, 통합진보당 1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본회의를 통한 신속처리 안건 지정도 불가능하다. 전체 의석 수가 300석인 19대 국회에서 신속처리 안건 지정에 필요한 의원 수는 180명이다. 하지만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의석 수는 153석에 불과하다.

기초연금법안의 경우 안건 신속처리제를 통하지 않으면 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단계부터 막힐 가능성이 높다. 복지위 법안심사소위는 여야 동수(4명씩)로 구성돼 있어 표결에 들어가더라도 과반이 안 되는 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정부 정책의 상당수가 법률 개정을 통해 이뤄지는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더라도 야당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마음먹은 대로 정책을 펼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올해 초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야당 반대로 50일 이상 통과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30일 정부조직을 ‘17부 3처 17청’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야당은 “개정안에 지상파 방송 허가권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며 법안 처리에 반대했다. 결국 여당이 방송 허가권을 방통위에 남겨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주며 개정안은 3월22일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발의된 지 52일, 박근혜 정부 출범 후 26일 만이었다. 그때까지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식물정부’였다.


○일각에선 위헌론 제기

이처럼 ‘부작용 투성이’인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여당 내에서는 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민주당이 8월1일부터 9월23일까지 54일간 장외투쟁을 벌일 수 있던 것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 부동산 정상화 법안 등 산적한 현안을 볼모로 민주당이 국회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과거 소수 야당 시절 툭하면 협상을 뒤로한 채 장외로 나갔던 행태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당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야당 협조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을 “국회의원 편하자고 나라를 망하게 하자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선진화법은 야당 또는 소수당이 이 제도를 악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 때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라며 “민주당의 행태를 지켜보면 이 제도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했던 황우여 대표와 남경필 의원 등은 이 법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법을 악용한 야당이 잘못이지, 법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16~18대 국회에서 몸싸움을 포함한 폭력 사태가 31차례 발생했고,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도 14차례 발동됐지만 19대 국회 들어서는 이런 사례가 없다는 점도 국회선진화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특별취재팀 = 손성태 차장, 김재후 이태훈 기자(이상 정치부), 주용석 차장대우, 런던·스톡홀름=김주완 기자(이상 경제부), 이태명 기자(산업부), 장진모 워싱턴 ·안재석 도쿄 특파원, 남윤선 기자(이상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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