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단절된 시장주의자

입력 2013-10-08 17:26   수정 2013-10-09 03:33

사회적 시장경제 안착시킨 獨 경제
나라 미래 앞에 左右 구분 무의미

이종걸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



마침 메르켈주의자 A를 만난 지난달 27일 독일 기민당의 대승이 보도됐다. 나는 A가 “독일 기민당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유로존 재정위기를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취지로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독일 자민당이 4.88% 득표로 독일의회에서 퇴출된 것이 이번 선거의 주목거리”라는 말을 했다.

자민당은 정강정책면에서 한국의 새누리당 및 민주당 절반 이상의 국회의원 이념과 비슷한 정당이다. 한국 국회의원 상당수가 독일이었다면 외면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분단국가임에도 사회주의에 대한 탐닉과 탄압의 공존을 경험했던 우리 세대는 단절된 시장주의자가 됐다. 시장에 공공부문이 개입하면 ‘파레토 최적’(자원배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진 상태)을 이룰 수 없다는 미국식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소득 2만달러대에 7년째 묶여 있다. 반면 360만개의 중소기업이 99%의 일자리를 가지고 있고, 대기업은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인정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정하고 합당한’ 차이의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나라인 독일에는 완전한 사적 거래가 보장되는 재화는 별로 없다. 어린이 보육, 학교 교육, 건강보험은 거의 공공재로서 무상이 원칙이다. 일자리를 쉽사리 없앨 수 없고, 7년간 일자리를 유지하면 중소기업은 상속세를 면제받는 등 각종 장려책도 마련돼 있다.

좌파 성격이 강한 독일의 성과와 매카시즘 자리에 시장이 앉혀진 미국의 현재 모습을 비교해 본다. 이제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좌니, 우니 하는 오래된 차별의식을 던져버릴 때도 됐다. 연간 5000만원을 넘는 미국 사립고교·대학 등록금이 시장이라면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상수가 아니고, 건강에 관한 상품은 시장 즉 민영보험에 의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제야 오바마케어로 8일째 정부 폐쇄라는 혈투를 벌이는 사태로까지 간 미국의 제도 또한 상수는 아니라는 것을 자신 있게 드러낼 때가 됐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비관한 나머지 자살하는 학생과 부모가 있는 대한민국이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중증질환 치료를 포기하는 다수의 중산층도 존재한다. 우선 세금으로 조정하는 길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있는 사람들이 납세를 꺼리고 있는 현실, 더구나 증세를 외친 정치인은 반드시 다음 선거에서 심판된다는 현실까지 눈앞에 놓여 있다. 나의 머리와 가슴이 서로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이종걸 <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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