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교수의 경제학 톡] (54) 국민건강보험

입력 2013-10-09 17:26  

미국이 연방정부 폐쇄로 시끄럽다. 의회에서 10월부터 시작되는 1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등의 핵심에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전 국민 의무 의료보험 시행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989년에 공식적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된 후 보장 수준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이런 소동이 의아할 수 있다. 전 국민 의료보험의 경제학적 의미는 무엇이고, 또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대수의 법칙’과 ‘역선택 방지’로 설명할 수 있다. 대수(大數)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란 어떤 특정한 현상이 일어날 확률은 적은 횟수로 측정했을 때에는 뚜렷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 횟수를 크게 늘리면 이론적 확률로 접근하는 현상이다. 전체 국민을 포함하여 보험가입자 수가 커지면 지급 규모를 예측하는 데에 정확성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보험가입자 수가 적을 때보다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보험가입을 의무로 하는 이유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방지 때문이다. 역선택이란 이해관계로 얽힌 경제주체들 간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 전 거래 상대방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불리한 계약이 몰리는 상황을 말한다. 즉 보험제공자 입장에서 보면 보험가입 희망자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보험제공자가 원하지 않는 유형의 희망자가 몰리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경우에는 질병이나 사고 위험이 큰 사람일수록 더 보험에 들고 싶어한다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의무 가입은 역선택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긍정적 의미들을 생각하면 우리 건강보험공단의 재무상황은 민간 보험회사들보다 나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2년 말 현재 건강보험공단의 부채는 1조3000억원에 달하고, 2017년 말에는 8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문제는 건강보험 혜택이 더 빠른 속도로 커진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난다는 것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용자 자신이 부담하는 비용이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가격이 싸지면 수요량이 는다는 수요의 법칙을 상기할 때, 의료서비스 이용료가 줄어들면 기존 의료서비스 이용량에 건강보험공단 부담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싼 이용료 때문에 추가로 유발된 수요량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의료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포기해야 할 때가 왔다. 건강보험료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직장인들이 보험료를 더 낼지, 의료서비스 이용자가 비용 부담을 더 할지, 둘 다 할지의 문제이지만 지금의 복지 열풍으로 봐서는 첫 번째가 될 가능성이 정치적으로 높은 것 같다. 그것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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