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더 소중히 느껴지는 마누라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kys@chunh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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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독일에 머무르고 있다. 한 달 남짓의 꽤 긴 출장이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다. 아내와 출장을 함께 오긴 처음이다. 해외 출장은 거의 분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하다. 미팅도 많고 이동도 많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그래서 출장 때는 아내와 동행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함께하게 됐다. 혼자 집에 두는 것도 걸렸지만 아내가 함께하고 싶어해서다.
결혼한 지 35년이 훌쩍 넘었다. 아무것도 없던 내게 시집와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했다. 단칸방에 살 때도, 손수레를 끌며 장사를 할 때도, 사업이 어려워 생사를 고민할 때도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줬다. 특히 아내는 어려운 시기마다 가장 진실한 조언으로 나를 성장시킨 사람이다.
불교에서 부부의 인연은 80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1겁은 10리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를 천 년에 한 번씩 선녀가 내려와 옷깃으로 살짝 스치면서 그 바위가 다 마모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그러니 8000겁 부부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닌 셈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거쳐서 만난 부부,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과 아내인 것이다.
서로 맞지 않아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 말다툼도 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하루라도 못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날들이 있었음을. 힘들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아프기라도 한 날엔 옆에서 밤새워 지켜줄 사람은 그래도 아내밖에 없음을. 더 훗날 백발이 된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옆에 있는 아내밖에 없음을.
계절의 갱년기 가을이다. 외로움도 커지고 그리움도 커지는 계절이다.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이 쓸쓸해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때다.
김영식 < 천호식품 회장 kys@chunh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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