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외딴 섬'의 고민 실종돼
원전 말고 무슨 대안이 있을까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시끄럽던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밑그림이 나왔다. 국가정책 수립에 처음으로 민간과의 합의과정을 도입한 민관 합동 워킹그룹의 정책제안이다. 그 방향에서 연말 확정될 에너지기본계획의 골자는 전력요금은 올리고 원자력 발전 비중을 줄이는 것이다. 에너지정책 기조의 근본적인 개변(改變)인데 현실성이 있느냐는 논란이 뜨겁다.
2008년 정부가 수립한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원전의 발전설비 비중을 2030년까지 41%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2차 계획은 그 비중을 2035년 22~29%로 낮췄다. 노후 원전 폐쇄와 함께 예정된 것 말고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말자는 얘기다. 2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이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고, 국내 원전의 비리와 고장으로 인한 잇따른 가동정지로 신뢰가 추락하면서 국민 수용성이 크게 낮아진 것이 에너지정책의 근간을 흔들었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산업계·학계 인사들이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등의 에너지믹스를 비롯 원전 정책, 에너지 수요 및 가격체계 등 여러 이슈들을 총괄했다. 정부는 사실상 들러리였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 백년대계의 틀이 환경을 내세운 맹목적인 반(反)원전 포퓰리즘에 휘둘려 에너지안보를 무엇으로 지켜낼지에 대한 고민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경제성, 환경성, 안보의 세 가지 관점이다. 에너지는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지탱하는 최우선적인 인프라인데도 한국은 에너지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석탄이나 석유 등 부존자원이라고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처지다. 특히 핵심 에너지인 전력이 모자란다고 옆 나라에서 사올 수도 없는 ‘외딴 섬’으로 오직 스스로 자급자족해야 한다.
우리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전원(電源)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뿐이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일 수 없는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다. 이번 계획에서도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현 가능하지 않음을 정부 스스로 잘 안다.
신재생에너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이상(理想)에 그칠 것이다. 경제적으로 너무 비싸고 기술적으로 대용량의 기저부하(基底負荷)를 감당할 수 없는 소규모 분산형 전원의 제한적 효용뿐이다. 태양광의 1㎾h 생산단가는 470원, 풍력 130원 등으로 원전(40원)의 3~10여배나 된다. 게다가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부존량이나 개발여건 등이 매우 열악하다.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대규모 전원으로 개발하려면 엄청난 면적의 땅을 파헤쳐야 하고 산림을 훼손해야 한다. 결국 원전 비중을 줄이면 석탄과 석유, LNG 발전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데 따르는 환경파괴 문제가 아니라도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경제성이다. 석탄 60원, LNG 140원, 석유 180원의 ㎾h당 발전단가는 원전의 몇 배나 더 먹힌다.
정부는 다시 전력의 수요관리를 들고 나왔다. 우리 국민과 경제·사회가 전력을 너무 물쓰듯이 낭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총생산(GDP) 1달러를 생산하는데 쓰는 전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7배고 일본의 2.8배에 이른다. 전력요금이 너무 싼 탓이다. 하지만 계속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 못해 공급 자체가 이미 아슬아슬한 살얼음을 걷는 판에 원전을 묶고 전력요금을 올려 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 요금을 올려 전력소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그 기대로 공급부터 축소했다가 잘못될 경우 국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과 나라 경제의 손실은 계산조차 어렵다. 불과 10년의 수요 예측도 제대로 못해 발전설비 확충을 미루다가 시도 때도 없이 블랙아웃(대정전)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수십년 우리는 원전을 통한 값싼 전력 공급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원전의 대안은 없다. 그것이 나라 경제와 사회 안정을 지키는 에너지안보의 첫째 명제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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