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빈곤퇴치의 유일한 방법은 성장"…美에 자유주의 여론 형성

입력 2013-10-18 17:00  


(39) '자유시장의 수호자' 헨리 해즐릿

19세기 말 이후 기울기 시작하던 자유주의는 20세기 초반 들어 ‘몰락’ 수준으로 떨어졌다. ‘개인의 자유’ ‘시장경제’ ‘작은 정부’ 등을 주장하면 시대의 낙오자로 낙인 찍힐 정도였다. 그런 탓에 자유주의를 전공하는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자유주의 저널리스트도 소수였다.

자유주의가 이처럼 위축된 상황에서 일관된 논리로 간섭주의의 오류를 지적하고 자유경제를 수호한 인물이 미국 저널리스트 겸 경제철학자인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미숙련 근로자였다. 저임금과 빈번한 해고 속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동안 청년 해즐릿은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습득하면 높은 노임과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탁월한 글쓰기 재주를 인정받았던 그는 저널리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경제를 보는 관점을 확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인식론 경제학 철학 윤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다.

해즐릿은 자유주의가 위축된 게 이념 자체에 오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데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공공정책이 적합한가에 대한 담론을 그의 일생의 과제로 여겼다.

주목할 부분은 개인이나 사회 번영을 위한 필수적 기초는 사회협력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가격의 역할에 대한 해즐릿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생산물이나 서비스의 구매와 판매를 통해 서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장차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지식이 필요한데, 이런 지식을 전달하는 게 가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격의 신호기능을 이해하려면 노동비용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격 시스템의 역할로 시장경제는 정부 간섭 없이도 스스로 조절하고 자생적으로 질서가 형성된다는 게 해즐릿의 논리다. 20세기 초 이래 정부 규제가 크게 늘어난 이유도 시장 자생력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윤은 혁신이나 생산비 절감 등을 통해 달성된다는 해즐릿의 논리도 명쾌하다. 이윤은 가격을 올리거나 노임을 낮추는 등 소비자와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꼬집는다. 기업의 이윤 추구야말로 노동자는 물론이요, 소비자의 후생을 증진시켜 사회 번영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이윤 추구를 위한 경쟁은 독점을 야기하기에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배격한다. 공급자가 하나이고 따라서 가격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독점이라는 말은 적실성(適實性)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독점 개념을 기초로 한 미국의 반독점 정책은 자의적이고 경제자유를 제약해 결과적으로 기술 혁신과 경제적 번영을 저해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경제 번영을 가져오는 기술 개발은 실업을 야기한다며 자본주의를 비판한 일각의 논리에 대해선 경험적인 사례를 들어 맞받아쳤다. 1760년 영국에서 물레를 사용하는 방적공과 베 짜는 직공 7900명에게 방적기를 제공했는데 27년이 지난 1787년 면방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가 32만명으로 크게 증가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묻는다. 자본과 기계는 노동의 친구요, 보편적 풍요를 가져오는 핵심 요소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시장경제는 빈곤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그 체제를 폄훼하고 재분배를 옹호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해즐릿은 재분배는 소득 창출을 위한 조건과 제도를 파괴한다는 논리로 응수했다. 빈곤 퇴치의 유일한 방법은 성장이라는 그의 성장철학이 돋보인다. 부의 증진은 우정 동감 소속감 등 도덕의 증진과 보존에도 기여한다는 그의 주장은 참신하다.

해즐릿 사상의 백미는 눈에 보이는 효과에만 집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하는 공공정책의 치명적 오류에 대한 인식이다. 금융 특혜나 가격 통제, 최소임금제 등과 같이 당장 눈에 보이는 공공정책은 단기적 효과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눈에 보이는 효과에만 몰입하고 장기적인 효과를 무시하는 경제학자들도 치명적인 간섭주의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런 경제학자는 선보다는 악을 산출한다는 게 해즐릿의 지적이다. 이들 때문에 균형예산 원칙, 금본위제 입법을 억제하는 장치 등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제도가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한다.

단기적 효과는 물론이요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는 훌륭한 경제학자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그래서 자유를 주창하고 제한된 정부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자유·정의·번영이라는 세 가지 가치의 삼위일체를 구현한 게 시장경제라는 게 해즐릿 사상의 결론이다.


케인스주의 비판적 분석…레이건도 공로 인정해

해즐릿 사상의 힘

헨리 해즐릿은 ‘주관주의·개인주의·시장은 균형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등의 오스트리아학파 자유주의 철학을 재조명해 자유주의 사상을 확립했다. 그가 뛰어난 경제철학자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즐릿은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자유시장뿐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루스벨트 뉴딜정책, 케인스 정책으로 미국의 정부지출은 급증했다.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를 반영하는 복지국가 확대도 정부지출 증가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해즐릿은 인류문명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반(反)자유주의 이념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지론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건 자유주의 이념이라는 것이었다. 인간 이성은 이런 이념을 발견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즐릿은 저널리스트로서 대중에 자유주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반인들을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쉽고 간명하게 설명해주는 역할, 즉 대중과 전문연구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에 충실했던 인물이 해즐릿이다. 해즐릿은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자인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와 비유된다. 바스티아 역시 자유주의 철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대중에 충실히 전달한 인물로 유명하다. 해즐릿을 20세기 바스티아라고 부르는 이유다.

20세기 자유주의의 거성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해즐릿은 이런 미제스의 사상을 쉽게 현실에 접목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평가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명저 ‘노예의 길’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회를 만들어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을 미국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도 그다.

해즐릿은 단기효과에 몰입하는 케인스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반케인스주의의 견고한 전선을 형성한 경제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1981년 보수주의자 모임에서 해즐릿은 자유주의 사상으로 미국 사회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고 공개적으로 칭송했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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